따분하다. 따분할 때면 사람을 죽인다. 살인이라는 자극적인 행위를 통해 따분함을 극복하기 위함이다. 물론 실제로 사람을 죽일 수는 없고, 사람을 죽이는 게임을 한다. 게임이라는 자극적인 행위를 통해 따분함을 극복하기 위함이다. 게임을 하며 사람을 많이 죽였다. 몇천명인지 몇만명인지 셀 수도 없다. 너무 많이 해서 감각이 둔해진 걸까, 무뎌진 걸까, 날을 간 지 오래되어 손을 베일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낡은 과일 깎는 칼처럼, 아무리 잡고 휘두르며 사람을 찔러도 아무것도 찌른 것 같지 않고, 나는 따분한 그대로다. 어쩌면 죽이니까 따분한 것일지 모른다. 죽임이라는 죄에 대한 벌로 따분함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이지 말고 대신 살리면 될지 모른다. 고귀한 생명을 이 손으로 살렸다는 그 성취, 고양..
쓰레기를 주웠다. 우산이다. 빗줄기가 거세져서 곤란했는데 마침 잘 됐다. 이걸로 더 이상 비에 차이지 않아도 된다. 쓰레기를 주웠다. 환경이 깨끗해졌다. 지구는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었다. 선행을 하니 기분이 좋다. 지구가 깨끗해졌으니 지구를 위한 선행이고, 내 몸을 공격하는 빗줄기를 방어했으니 나를 위한 선행이다. 일석이조다. 일거양득이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케이크를 먹었지만 케이크를 가졌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사실 우산은 쓰레기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주인이 잠시 두고갔을지 모른다. 이 경우 나는 선행이 아니라 오히려 악행을 한 것이 된다. 절도죄든, 사유물임의점유죄든, 뭐든, 그런 비슷한 죄에 속할 악행을 저지른 것이다. 나는 선행을 한 걸까? 아니면 악행을 한 걸까? 의도로 선악을 ..
저서 에서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성유리[4]가 쓴 동시를 극찬하며 소개했다. 제목 : 소 소의 눈은 참 크다. 두 눈을 보면 참 착하게 보인다. 소는 참 착한가 보다. 소가 사람이 되면 이 세상은 다 착한 사람이 될 거다. 이 글은 줄글로 썼지만 훌륭한 시가 되었습니다. 이름 앞에 적힌 '2학년'을 지우고 이글을 어른들에게 보여서 "이것은 유명한 시인의 시입니다."고 해도 감동할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정말 사람이 소같이만 되면 이 세상은 얼마나 평화스럽고 즐거운 세상이 될까요? 어린이는 철학이고 종교고 무슨 주의고 사상이고 다 모르지만, 어른들이 오랜 세월 애써 겨우 깨닫게 된 진리를 아주 단순하게 직감으로 느끼면서 살아갑니다. 이런 어린이는 숙제와 시험 공부에 매달려 있는 어린이가 아니고, 자연..
편의점에 들어갔다. 알바는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나는 필요한 물건을 골라 계산대로 가져왔고 알바는 식사를 멈추고 물건을 계산해주었다. 나는 말했다. "식사하시는데 죄송합니다." 뭐? 죄송? 이런 가증스러운 위선자 같으니. 정말 죄송했다면 알바가 식사하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편의점을 나갔어야 했다. 편의점에 들어가기 전 혹시 알바가 식사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창 너머로 동태를 살폈어야 했다. 죄송할 일을 예방하는 어떠한 조처도 하지 않은 채 뻔뻔하게 내뱉었다. "식사하시는데 죄송합니다." 그저 남에게 민폐를 끼쳤다는 마음의 짐을 덜고 도덕적 허영을 충족시키고 싶을 뿐이었다. 남을 위해서가 아닌 자기만족을 위해 던진 무게라고는 없는 말이었다. 모든 죄송은 다 이런 식이다. 죄송하다면 하지를 말았어야 했다...
오늘도 [리만 가설]을 해결하여 부와 명예를 거머쥐는 망상을 하면서 걷고 있었다. (참고로 나는 [리만 가설]이 무슨 내용인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 공부해서 알면 되니까 상관없다.)(리만 가설 해결하면 분명 대중강연 요청이 들어올텐데 그 때 무슨 내용으로 강연할지가 망상이다.) 망상에 정신이 팔려서 다가오는 차를 보지 못했다. 다행히 피했지만 정말 크게 다칠 뻔했다. 그 차는 30km/h 정도의 속도를 가지고 있었고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았을테니 아마 죽지는 않을 텐데 분명 크게 다칠 것이다. 허리를 다쳐서 하반신 마비가 될지도 모르고 목을 다쳐서 전신마비가 될지도 모른다. 다행이다. 너무 다행이다. 오늘도 저를 안전하게 지켜주신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 ------------------- 에 보면 나옵니..
나는 박정희를 죽였다. 사악한 독재자이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박정희를 죽이는 상상을 했다. 그는 이미 죽었으니 내가 죽일 수 없고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내게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박정희가 사악한 독재자라도 그렇지 그래도 일국의 대통령이었는데 죽이다니, 다시 생각해봐도 내가 잘못했다. 백 퍼센트 나의 잘못이다. 나는 나의 잘못을 인정한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자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아름답다. 고백하자면 나는 아름다워지기 위해 고의로 그를 죽였다. 이런 나도 아름다운가? 물론 아름답다. 내가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사람도 죽일 수 있는 불한당이라는 것을 용기있게 고백하여 죄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자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올해 초의 결심을 지켜내고 금연에 성공했다. 술과 담배와 스타크래프트는 끊는 것이 아니라 평생 참는 거라는 속설이 있긴 하지만 올해 이후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으니 이정도면 충분히 성공이라고 불러도 될법하다. (간접흡연을 한 적이 분명 있지만 이는 내 잘못이 아니라 하겠다.) 해냈다. 해냈다. 해냈다. 내가 해냈다. 굳건한 의지로 결심을 지켜냈다. 한때는 내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라 느꼈지만 이는 명백한 거짓이었다. 나는 할 줄 아는 인간이다. 정말 이 정도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성취감이란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거짓말이다. 자기기만이다. 사실은 전혀 성취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고작 금연에 성공한 것 가지고? 애초부터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도 수두룩한데, 겨우 담배 좀 끊었다..
나는 노력으로 만들어진 사람이다. 지금까지 삶에 임하여 전력을 다해 노력해왔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내 노력의 결과다. 나의 피땀으로 일궈낸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은 비행기 한 대가 전부다. 너무 보잘것없다. 비행기라고 하면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랍에미리트항공은 비행기를 수백 대 보유하고 있다.) 도대체 이 비행기를 어디에 쓴단 말인가? 이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하려고 해봤지만 나는 비행기 운전을 할 줄 모르므로 기장(비행사)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연료값이 많이 들고 안전한 운행을 위해 점검도 해야 하는데 그게 다 비용이다. 다행히 밥은 혼자서 찾아 먹으면 되니 항공승무원 비용은 아낄 수 있겠지만 그걸 고려해도 대한항공 비즈니스 클래스가 훨씬 더 싸다. 이코노미 클래스를 이..
사정상 다시 고등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별로 바라던 바는 아니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다.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삶이라고 하지 않던가. 일진들은 여전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들 앞에서는 언제나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했다. 나보다 사회 경험이 한참 부족한 하룻강아지들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니. 그러나 비록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더라도 상황에 맞게 처신하는 것이 최선이다. 나이가 곧 권력인 것은 초등학생 때까지이다. 비록 나보다 나이는 적지만 그들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고, 살아남아야 했다. 나는 그들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도록 언제나 눈을 내리깔았다. 그들이 불의를 행할 때,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가지고" 라고..
네가 죽였니? 그럴 리가 없지. 나는 이미 알고있어. 네가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너를 믿어. 아니, 믿을 필요도 없어. 굳이 믿지 않아도 모든 것이 명백해. 죽인 것은 그놈이야. 그놈은 그놈 대신 너를 벌받게 하고 자신은 빠져나갈 계획이겠지. 교활한 놈. 계획대로 되게 둘 것 같아? 그놈은 그 불쌍하게 죽은 청년의 인생을 끝내버렸고, 거기에 네 인생까지 망치려고 하고 있지. 저번에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 하는 모습 봤지? 뻔뻔한 놈. 그놈은 악마인 걸까? 죄책감이라곤 없는 걸까? 분명 그놈 기억에 남아있을거야. 자기 손으로 칼을 쥐고 그 청년을 수십번 찌른 기억이. 자기가 살인을 한 후 너를 휘말려들게 한 그 기억이. 보통 인간이라면 죄책감에 괴로워하며 죄를 자백하고 기꺼이 법의 처벌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