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편의점에 들어갔다. 알바는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나는 필요한 물건을 골라 계산대로 가져왔고 알바는 식사를 멈추고 물건을 계산해주었다. 나는 말했다.
"식사하시는데 죄송합니다."
뭐? 죄송? 이런 가증스러운 위선자 같으니. 정말 죄송했다면 알바가 식사하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편의점을 나갔어야 했다. 편의점에 들어가기 전 혹시 알바가 식사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창 너머로 동태를 살폈어야 했다. 죄송할 일을 예방하는 어떠한 조처도 하지 않은 채 뻔뻔하게 내뱉었다. "식사하시는데 죄송합니다." 그저 남에게 민폐를 끼쳤다는 마음의 짐을 덜고 도덕적 허영을 충족시키고 싶을 뿐이었다. 남을 위해서가 아닌 자기만족을 위해 던진 무게라고는 없는 말이었다.
모든 죄송은 다 이런 식이다. 죄송하다면 하지를 말았어야 했다. "나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가 거짓일 수 없는 것처림, "죄송합니다"는 죄송할 수 없다. "죄송합니다"는 모순을 함의한다.
죄송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라곤 없이 죄송하다는 말만으로 넘어가기 위해 "죄송합니다"는 남용된다. 살면서 얼마나 많이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는가? 그 수만큼 목이 잘려야 한다.
죄송하지조차 않은 사람도 있다. "손님이 오면 직원은 항상 일어나 있어야 하는 편의점 업계의 인권 탄압적 근로규정이 문제" 라고 지적하며 지적인 척 하는 사람도 있다.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리는 가증스러운 좌파 쓰레기들이다. 이들은 언제나 선악의 대립구도를 상정하며 그 구도 하에서 선의의 피해자는 자신이고 악의의 가해자는 거대조직이다. 이들은 도덕적 허영을 채우고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 죄송한 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남 탓을 한다. 이들은 잘못한 것조차 없다. 기막한 발상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이러한 발상은 매우 자연스러우며 직관적이다.
다 이런 식이다. 모두가 위선자다. 위선자가 아닌 사람이라고는 태어난지 1년도 채 되기 전에 죽은 영아 뿐이다. 그러나 그들도 안 죽고 계속 살았다면 위선자가 될 운명이었다. 그들 역시 잠재적 위선자다. 마치 모든 남성(및 여성 및 기타성)이 잠재적 성(및 강력 및 경)범죄자인 것처럼. 마치 모든 운전자가 잠재적 과실치사 가해자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