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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주웠다. 우산이다. 빗줄기가 거세져서 곤란했는데 마침 잘 됐다. 이걸로 더 이상 비에 차이지 않아도 된다.
쓰레기를 주웠다. 환경이 깨끗해졌다. 지구는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었다. 선행을 하니 기분이 좋다.
지구가 깨끗해졌으니 지구를 위한 선행이고, 내 몸을 공격하는 빗줄기를 방어했으니 나를 위한 선행이다. 일석이조다. 일거양득이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케이크를 먹었지만 케이크를 가졌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사실 우산은 쓰레기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주인이 잠시 두고갔을지 모른다. 이 경우 나는 선행이 아니라 오히려 악행을 한 것이 된다. 절도죄든, 사유물임의점유죄든, 뭐든, 그런 비슷한 죄에 속할 악행을 저지른 것이다.
나는 선행을 한 걸까? 아니면 악행을 한 걸까?
의도로 선악을 판단한다면 적어도 선행은 아닐 것이다. 사실 나는 지구가 깨끗해지던 말던 상관없었다. 그저 내가 비맞기 싫어서 우산을 주웠다. 비가 안 왔다면? 분명 나는 줍지 않고 지나쳤을 것이다. 위선이다. 이기심을 선으로 포장했다. 카페에서 어린이용 음료를 무상 제공하는 것을 기뻐하는 부모처럼, 자신의 제품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혁신 사업가처럼, 지식 전달을 자신의 소명으로 삼은 작가처럼, 나 역시 위선자였다.
의도와 관계없이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 좀 더 나을지 모른다. 이 경우 선악이란 올바른 판단의 문제로 환원된다. 버려진 우산이라는 내 판단은 과연 옳았을까?
옳을 리가 없죠. 사실 훔쳤습니다. 그래요, 저는 우산을 훔쳤어요. 내게 우산 따위는 필요없다는 천둥벌거숭이같은 허세를 부렸어요. 하지만 점점 강해지는 빗줄기 앞에 허세는 갈 곳을 잃었죠. 저는 손익 계산에는 매우 능합니다. 더 이상 허세를 부려봤자 얻을 게 없다고 재빨리 판단내린 저는 다급히 우산을 찾았어요.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우산을 발견했고, 제 양심을 속였어요. 아, 이건 버려진 우산이 분명하구나. 우산살이 빠져 있으니 버려진 우산이 분명하구나. 우산이 뒤집어져 있으니 버려진 우산이 분명하구나. 우산이 길가에 나뒹굴고 있으니 버려진 우산이 분명하구나.
하지만 과연 그런 것일까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제가 우산을 훔친 그 장소에서, 찾을 길 없는 우산을 찾아, 원 주인은 비를 맞으며 헤메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요. 정말 소중한 둘도 없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유일한 유품인 우산을 찾아서...
하지만 어찌됐든 제게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우산을 도둑맞은건 그 사람이지, 제가 아니거든요. 저는 비를 맞지 않을 수 있어서 너무나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