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는 서울대 입학이 삶의 유일한 목표였다. 목표를 이루고, 입학식 날 자살하려고 했다. 제가 어찌어찌 가까스로 서울대 입학할 수준은 될 것 같은데, 그 이후 학점을 잘 받는다던지, 좋은 데 취업을 한다던지, 아니면 뭔가 다른 엄청난 일을 한다던지... 그런 건 못 할 것 같아서요. 아마 서울대에는 뛰어난 학생들이 많이 올 텐데, 걔내랑 경쟁할 자신도 없고, 협동할 자신도 없고... 협동도 수준이 맞아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하긴 조별과제에서 아무 일도 안 하는 대신 모일 때마다 치킨셔틀이라도 하면 되나. 그래도 제가 명색이 서울대생인데, 치킨셔틀이라니, 그건 너무하잖아요? 저는 제 능력의 한계가 서울대 입학까지라는 걸 잘 알고 있었어요. 박수칠 때 떠나야죠. 최고의 순간에, 환희 속에서 삶을 마..
예전에 어디에선가 들었다. 변기 속에 사는 새는? 똥냄새. 되지고기를 먹었다. 약 12시간 후에 똥을 눴다. 똥에서는 되지고기 냄새가 났다. 보다 정확히는 되지불고기 냄새가 났다. 더욱 정확히는 되지불고기 양념 냄새가 났다. 결국 양념 냄새다. 사실상 되지고기 냄새와는 상관없다. 되지와는 상관없다. 정말 똥에서 불고기 양념 냄새가 난 걸까? 아니면 불고기 양념과는 상관없는 냄새가 났는데, 내가 12시간 전에 되지불고기를 먹었다는 사실에서 불고기 양념 냄새라고 판단한 걸까? 인식은 인식주체에 의존한다. 같은 달 표면을 보고도 누구는 토끼라고 하고, 누구는 오리라고 하는데. 불고기 양념 냄새는 정말 불쾌하다. 똥에서는 그냥 똥냄새가 나면 좋겠다. 하지만 불고기 양념 냄새 또한 하나의 똥냄새인 법이죠. 네가 ..
세계 최고의 카트라이더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문호준의 벽을 넘을 수 없었다. 문호준은 너무 빨랐다. 어떻게 저렇게 빨리 달릴 수 있지? 사실을 말하자면, 빠른 건 문호준만이 아니었다. 전대웅도, 유영혁도, 이중선도, 정승민도, 김대겸도, 김택환도, 내게는 너무 빨랐다. 무슨 짓을 해도 나는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들 앞에서 나는 좌절했다. 애초부터 불가능한 게임있어. 세계 최고의 카트라이더? 주제를 알아야지. 사실을 말하지만, 빠른 건 문호준과 전대웅과 유영혁과 이중선과 정승민과 김대겸과 김택환만이 아니었다. 공방(公房)에서도 나는 리타이어하기 일쑤였다. 사고 한 번 냈을 뿐인데, 선두는 우측 미니맵으로는 보이지도 않는 위치까지 가 있었다. 이제 완주할 수 있다는 희망은 사라졌어. 희망이 없다는..
It is always the wisest thing to act stupid. Your foes will let their guard down. You can work out a scheme to achieve whatever you want without being watched. Think about it. Let the two men each pick a number. Whatever their guesses are, you can choose whoever you want. Well, she did not expect that Elya would give up. Or did she? We do not know. We never know her intent. We cannot simply assu..
개쩌는 사업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분명 성공할 것이다. 치킨집 창업을 한다. 브랜드 이름은 "치킹"이다. 치킨의 왕이라는 뜻이다. 손님들이 오면 왕처럼 모신다. "치킨의 왕 치킹이시여, 무엇을 주문하시겠나이까." "분부 받들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옵소서." "황송합니다만 해당 메뉴는 다 떨어졌습니다. 신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부디 노여움을 거두시고 다른 메뉴를 골라 주시옵소서." 손님은 왕이라는 경구에도 잘 맞는 컨셉이다. 자기가 왕 대접받는데 기분이 좋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한 번 받은 왕 대접을 잊지 못한 손님들은 자꾸자꾸 가게를 찾을 것이다. 직원 교육이 핵심이다. 점주 및 단기 아르바이트를 포함한 모든 직원은 본사에서 적어도 2주간 교육받아야 한다. 치킨의 왕인 치킹을 섬기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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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을 정리하자. 이것은 토끼다. 오리가 아니라 토끼다. 저게 오리라니 말이 되냐? 오리는 끔찍하다. 오리는 기괴하다. 오리는 괴롭다. 오리는 고통스럽다. 묵묵히 나를 응시하는 오리의 눈은 내 모든 악한 생각들을 궤뚫어 나를 벌할 것이다. 오리의 부리가 내 귀를 찢고 눈을 파먹고 손가락을 자를 것이다. 부드러운 토끼 귀라면 그럴 일이 없다. 이것은 오리가 아니라 토끼다. 차갑고 딱딱한 오리 부리가 아니라 상냥한 토끼 귀여야 한다. 토끼가 아니라 오리라면 죽음이 차라리 낫다. 물론 토끼여도 죽음이 낫다. 죽음은 좋다. 비출생만 못하지만. 이것은 파이프이다. 이것이 파이프가 아니라면 저것은 오리도 아니고 토끼도 아니다. 그러나 저것은 토끼이고, 그러므로 토끼이거나 오리이고, 그러므로 이것은 파이프이다. 그러..
나는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이 아니면 믿지 않는다. 다른 이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믿지 않는 것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철기 시대 청동기 시대 신석기 시대 구석기 시대 쥐라기 선캄브리아기 원자, 전자, 양성자, 중성미자, 쿼크 중력 아뢰야식 미국, 홍콩, 스위스, 태국 ADHD 보이지 않는 손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 피타고라스 정리 선택공리 배중률 이 외에도 많으나 이만 줄이겠다. 물론 이 많은 것들을 믿지 않는다면 잘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나는 현대인이고, 현대란 그런 세계이다. 믿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믿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는 믿지 않는다. 단지 믿는 것처럼 연기할 뿐이다. 이 정도면 잘 살아가기에는 충분하다. 오늘 ..
이전에 어떤 수업 조교로 일한 적이 있었다. 익명으로 올라오는 강의평은 악평 일색이었다. 수업에서 좋은 부분이라곤 정말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조교에 비하면 다른 모든 것은 양반이었다. 정말 최악의 조교들이었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 ---익명의 수강생 익명성 뒤에 숨어서 막말하는군. ---조교 한 명의 조교로서 책임을 통감합니다. 좀 더 잘 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사실 학생들의 말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학생 입장이었다면 (......) 분명 조교들에게 문제가 있었 (......) 그러나 팔은 안으로 굽는 법입니다. 가재는 걔 편입니다. 조교인 제가 어찌 조교를 탓할 수 있겠습니까? 선생들은 선생들끼리 감싸고, 교수들은 교수들끼리 감싸고, 조교들은 조교들끼리 감싸는 법입니다...
수업 중에 휴대전화를 쓰지 말라고 하는 교수가 있다. 물론 휴대전화 통화를 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휴대전화를 쓰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 쳐다보면서 게임이나 웹서핑이나 카톡 등등을 하지 말라는 얘기죠. 지각한 사람은 수업에 안 들여보내주는 교수도 있다. 그 교수가 한 말이 생각나네. 왜 지금 왔어? 내 수업은 늦게 온 사람은 안 받는데? 어서 가! (반말로 함) 그들은 학회나 세미나에서 본인이 발표할 때도 똑같이 할까? 자신이 발표할 차례가 되면 청중의 스마트폰 사용을 막고, 지각한 사람은 자기 세션에 안 들여보낼까? "강의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주장하는 그들은, 학생이 아닌 자신의 동료들 앞에서 강의할 때도 청중에게 같은 것을 요구할까? 핵심은 강의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교수인 강..
보험에 가입해달라는 지인의 요청을 받았다. 이전에 들었는데, 어디에서 들었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보험 설계사라는 직업은 주변 지인들을 한 명 한 명 보험에 가입시켜 나가다가 지인들이 다 떨어져 갈 때쯤 되면 그만두게 되는 직업이라고 한다. 힘든 직업이네요. 저같은 아싸는 시작하지마자 그만두게 되겠네요. 아니 하긴 뭐 저도 지인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니까요. 페이스북 친구가 10명이 안 되긴 하지만 링크드인 커넥션은 10명이 넘는다. 나는 보험 설계사로서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내 페이스북 친구와 링크드인 커넥션 중 몇 명이나 보험에 가입해줄까? 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애 엄마를 보험 설계사로 내모는 게 가장이 할 짓이야?" 허영만은 전국의 모든 보험 설계사에게 사죄해야 하는 거 아니냐? 물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