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문서

치킹

계산 2019. 6. 24. 14:01

개쩌는 사업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분명 성공할 것이다.

 

치킨집 창업을 한다. 브랜드 이름은 "치킹"이다. 치킨의 왕이라는 뜻이다. 손님들이 오면 왕처럼 모신다.

 

"치킨의 왕 치킹이시여, 무엇을 주문하시겠나이까."

"분부 받들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옵소서."

"황송합니다만 해당 메뉴는 다 떨어졌습니다. 신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부디 노여움을 거두시고 다른 메뉴를 골라 주시옵소서."

 

손님은 왕이라는 경구에도 잘 맞는 컨셉이다. 자기가 왕 대접받는데 기분이 좋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한 번 받은 왕 대접을 잊지 못한 손님들은 자꾸자꾸 가게를 찾을 것이다.

 

직원 교육이 핵심이다. 점주 및 단기 아르바이트를 포함한 모든 직원은 본사에서 적어도 2주간 교육받아야 한다. 치킨의 왕인 치킹을 섬기는 자세, 치킹을 대할 때의 말투, 등등 사소한 것을 하나하나 철저히 배워야 한다. 서빙 직원이 실수로

 

"안녕하세요."

 

라고 말하는 순간 모든 것은 끝장난다. 손님은 자기가 치킨의 왕 치킹이라는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아 나는 치킹이 아니구나. 치킹이 아닌데 치킹에 올 필요도 없다. 에이 그냥 가자.

 

평소의 언어습관을 모두 바꿔야 하는 만큼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부작용이 있을지 모른다. 지인을 만났을 때도

 

"어서 오십시오, 치킨의 왕 치킹이시여."

 

라고 인사하게 되는 직원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업 성공을 위해 다소의 희생은 필수불가결하다.

 

어느 정도 궤도에 이르면 같은 컨셉을 다른 분야로 확장한다. 커피의 왕에게 커피를 대접하는 "커피킹"이라는 브랜드를 만든다. 피자의 왕에게 피자를 대접하는 "피자킹"이라는 브랜드를 만든다. 버거의 왕에게 버거를 대접하는 "버거킹"이라는 브랜드를 만든다. 우리 버거킹이 아닌 다른 버거킹이 표절을 빌미로 우리를 고소할 것이다. 치열한 법정 싸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지 않는다. 회사 대표인 나는 법정에서 주장한다.

 

"다른 버거킹에서는 손님이 킹이 아니라 버거가 킹입니다. 버거는 그저 나에게 먹힐 뿐인데, 버거가 킹이라니, 말도 안 되지 않습니까? 우리 버거킹은 다릅니다. 버거의 킹은 바로 손님입니다. 버거는 그저 버거킹이신 손님에게 먹힐 뿐입니다."

 

이렇게 다른 버거킹에게 승소했다. 우리는 지지 않는다. 이제 요식업이 아닌 다른 분야까지 사업을 확장한다. 컴퓨터 학원 체인을 차린다. 학원명은 "해킹"이다.

 

"저희는 해킹의 왕 해킹을 모십니다. 저희 학원에서 배우시는 모든 분들은 해킹의 왕이십니다."

 

해킹은 해킹의 왕이 아니라 해의 왕이라는 반론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마네(真似、まね)킹은 흉내내기의 왕이 아니다. 바이킹은 바이의 왕이 아니다. 스모킹(smoking)은 스모의 왕이 아니다. 해킹 역시 해의 왕이 아니다.

'문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 최고의 카트라이더  (0) 2019.07.08
Myra was not stupid  (0) 2019.06.26
혼란 정리  (0) 2019.06.21
나는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이 아니면 믿지 않는다  (0) 2019.06.18
팔은 안으로 굽는다  (0) 2019.06.05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