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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카트라이더

계산 2019. 7. 8. 00:51

세계 최고의 카트라이더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문호준의 벽을 넘을 수 없었다. 문호준은 너무 빨랐다. 어떻게 저렇게 빨리 달릴 수 있지?

사실을 말하자면, 빠른 건 문호준만이 아니었다. 전대웅도, 유영혁도, 이중선도, 정승민도, 김대겸도, 김택환도, 내게는 너무 빨랐다. 무슨 짓을 해도 나는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들 앞에서 나는 좌절했다. 애초부터 불가능한 게임있어. 세계 최고의 카트라이더? 주제를 알아야지.

사실을 말하지만, 빠른 건 문호준과 전대웅과 유영혁과 이중선과 정승민과 김대겸과 김택환만이 아니었다. 공방(公房)에서도 나는 리타이어하기 일쑤였다. 사고 한 번 냈을 뿐인데, 선두는 우측 미니맵으로는 보이지도 않는 위치까지 가 있었다. 이제 완주할 수 있다는 희망은 사라졌어. 희망이 없다는 걸 깨달은 인간은 자포자기한다. 이제 더 이상 노력할 필요 없어. 더 이상 인코스를 팔 필요 없어. 더 이상 드리프트 감속을 줄일 필요 없어. 더 이상 부스터를 모을 필요 없어.

하지만 이렇게 끝날 수는 없지. 쥐도 외통수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다. 부모에게 학대받으며 자란 아이는 연쇄살인범으로 성장하는 법이다. 가망이 없어진 라이더는 막자하는 법이다.

좁은 골목 앞에서 선두를 기다렸다. 내가 이 위치에 서있으면 나와 부딪힐 수밖에 없지. 너는 하늘 너머 저 멀리로 날아갈거고, 1등을 빼앗길 수밖에 없지. 그는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쾅! 나는 그를 쳐서 날렸다. 그러나 그는 빠른 속도로 사고를 회복했고, 1등을 지켰다. 나는 리타이어했다. "막자당해도 1등 ㅋㅋㅋㅋ", 그는 환희에 차 말했다. 악전고투 끝에 얻은 승리는 더욱 값지고, 온갖 비겁한 술수를 다 쓴 후의 패배는 더더욱 비참하다. 내 최후의 발악은 그와 나의 격차를 더욱 극명히 했을 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차피 없어. 하더라도 역효과만 낼 뿐이야. 이럴 거면 그만두는 게 차라리 낫겠어.

그냥 해 본 소리다. 문호준과 유영혁과 이중선은 카트라이더가 아니다. 그들은 카트라이더 프로게이머일 뿐이다. 막자에도 불구하고 1등을 한 공방 걔는 카트라이더 고수 유저일 뿐이다. 걔내들이 하는 일이라곤 고작, 컴퓨터 앞에 앉아서, 모니터를 쳐다보며, 적절한 때 적절한 키를 누를 뿐. 그들은 주행을 할 때 바람을 가르는 느낌을 모른다. 드리프트를 할 때 차가 진동하는 느낌도 모른다. 집중해서 오랜 시간 게임을 한 후 눈이 건조해지는 느낌, 오른손 중지와 왼손 약지의 뻐근함, 그들이 아는 건 고작 그 정도다.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이 트랙을 몇 분 몇 초에 주행하건, 대회 상금으로 얼마를 벌건, 방송 수입으로 얼마를 벌건, 나는 부럽지 않다. 그런 것들은 내게 중요하지 않다.

나는 카트라이더가 되고 싶었다. 세계 최고는 아니더라도, 진짜 카트라이더가 되고 싶었다. 카트라이더 프로게이머 말고, 카트라이더 게임 개발자 말고, 카트라이더라는 게임 자체 말고, 카트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트랙을 주행하는, 그 카트라이더요. 다오나 배찌나 디지니나 리버스 박사 같은, 그런 카트라이더요.

붐힐마을에 살고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다오, 배찌, 디지니와 잡담이나 좀 하다가, 심심하면 카트나 타고 트랙을 좀 달리다가, 그러다 좀 지루해지면 물풍선이나 좀 던지다가, 그러다 그것도 지겨워지면 물총이나 좀 쏘다가, 그러다 그것도 질리면 낮잠이나 좀 자다가. 그렇게 살고 싶었다. 모니터 밖에서 그들이 뭘 하는지 구경만 하지 말고, 모니터 안으로 들어가 살고 싶었다.

게임은 좆같다. 그저 모니터 안 캐릭터를 조작할 뿐이잖아요. 직접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요. 모든 게 다 가상 세계의 일일 뿐이잖아요. 내가 게임을 싫어하는 이유다. 나는 게임을 증오한다.

어쩌면 그들에게도 내가 알지 못하는 고통이 있을지 모르죠. 모니터 밖에서 키보드를 조작하는 우리와 달리, 그들은 벽에 박았을 때 온몸의 뼈가 골절되는 끔찍한 고통을 겪을지 모른다. 물방울 안에 갖혔을 때 몸 곳곳의 이산화탄소가 제때 배출되지 않을 때 느껴지는 끔찍한 질식감을 느낄지 모른다. 생각해보니 모니터 밖 세계가 훨씬 낫겠네요. 다행이다. 여기에 태어나서. 아픈 건 정말 끔찍해.

인식론적으로 별 차이 없을지 모른다. 모니터를 통해 세계를 지각하는 것이나, 눈 귀 코 혀 몸 등 감각기관을 통해 세계를 지각하는 것이나. 어차피 세계를 직접 알 수는 없다. 내가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내가 된 꿈을 꾸는 것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알지 못하는 이상 구별은 의미없다. 물(物)과 내가 다르지 않다. 카트라이더와 내가 다르지 않다.

말이 되나? 모니터를 통해 보는 거랑 눈 귀 코 혀 몸을 다 써서 느기는 거랑은 분명히 다르단 말이에요. 카트라이더는 종료 버튼을 누르면 끝이란 말이에요. 하긴 목을 매달거나 높은 데에서 뛰어내리거나 하면 현실의 삶도 끝이니 마찬가지인가. 그래도 카트라이더는 다시 켤 수 있긴 하죠. 영원히 접는 사람도 있지만.

영원은 지나가지 않았다. 영원은 지나가지 않는다. 영원은 과거나 현재일 수 없다. 걔는 영원히 접은 게 아니라 이전에 접었다가 지금까지 안 폈을 뿐이야. 걔는 영원히 죽은 게 아니라 아직 안 살아났을 뿐이야. 영원은 지나가지 않았고, 지나가지 않는다. 영원히 죽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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