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인터넷 컴퓨터

중학교 때는 게임을 좋아했다. 밤새 게임하다 중간에 배고프면 라면을 먹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계속 게임을 하는 게 너무 즐거웠다. 해가 뜰 때쯤이 되면 잠에 들었다. 학교에 가는 날이면 금새 다시 일어나서 학교에 가서 계속 잤고, 주말이나 방학이나 휴일이나 빨간 날이면 집에서 낮까지 계속 잤다. 엄마는 내가 그러는 걸 싫어했다. 왜 싫어하는 거지? 나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밤에는 자야 하지? 왜 게임하면 안 되지? 그럼 나는 그 시간에 뭘 해야 하지? 공부를 더 해야 하나? 지금도 성적이 아주 나쁜 것도 아닌데.

게임을 하다 질리면 웹툰을 보거나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눈팅을 했다. 가끔 글이나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키배(인터넷 상에서의 논쟁을 이르는 말)를 뜨기도 했다. 그렇게 인터넷에 빠져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엄마가 방해하지만 않았어도 더 즐거웠을 텐데.

나는 가진게 별로 없다. 욕심 부리지 말고,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살려고 했다. 인터넷과 게임과 컴퓨터는 내가 가진 거의 모든 것이었다. 평생 인터넷과 게임과 컴퓨터만 하고 살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내가 그렇게 많은 걸 원하는 것도 아니잖아? 나는 돈도 필요없어. 나는 대학도 필요없어. 나는 친구도 필요없어. 나는 애인도 필요없어. 나는 인터넷과 컴퓨터만 있으면 충분해.

"이런 게 무슨 의미가 있어? 맨날 이상한 사이트에 이상한 댓글만 달고. ㅋㅋ거리고. 평생 이렇게 살 순 없을걸? 나이가 들면 하기 싫어도 공부해야되고 하기 싫어도 일해야되고 하기 싫어도 결혼해야되고 어쩌고 저쩌고" -- <공부하는 사람들> 中

의미? 그렇다면 삶에 의미란 무엇에 있니? 인터넷과 컴퓨터가 삶의 의미가 되면 안 되는 거야? 나는 인터넷과 컴퓨터를 통해 무한한 즐거움을 느껴. 이 이상의 의미를 어디서 찾을 수 있니?

 

 

내 즐거움을 방해하는 엄마는 이제 죽고 없다. 죽으면서 유산을 남겼다. 계산을 해봤다. 이 정도 금액이면, 평생 일하지 않고 살아도 되겠구나. 해외여행은 못 가고, 비싼 게임 아이템도 못 사고, 치킨도 잘 못 시켜먹을 금액이지만, 나는 그런 것들이 없어도 충분하니까. 해외여행을 가는 대신 구글에서 해외 관광명지 사진을 검색해보면 된다. 별로 게임 랭커가 되고 싶은 욕심은 없으니 무료 아이템만으로도 충분하다. 치킨은 맛있지만, 나는 라면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라면은 정말 가성비 킹이지. 가성비 킹인 것들만 즐기면서 살면, 이 돈으로도 충분해. 일하는 건 너무 무서워. 굳이 돈을 벌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

공부를 하고, 대학을 다니고, 약대 편입시험이나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다 편하게 먹고 살기 위해서 싫어하는 걸 억지로 하는 거지. 정말 불쌍해. 하고 싶은 것도 못 하며 그렇게 아둥바둥 살아야 하다니. 나는 이미 편하게 먹고 살고 있어. 앞으로도 계속 편하게 먹고 살 수 있어. 내가 그런 도전을 할 필요는 없어. 마치 21세기 사람이 비행기를 발명하려 노력할 필요가 없듯이.

엄마의 죽음이 조금은 슬펐지만, 이제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뻤다.

그런 날들이 계속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 인터넷도 컴퓨터도 별로 즐겁지 않다. 게임을 해도 한 시간이면 하기 싫어진다. 이상한 댓글을 달고 ㅋㅋ거리는 것도 허무하다. 역시 평생 이렇게 살 수는 없는 거였나? 요즘 슬럼프인가? 권태기인가?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다시 인터넷과 컴퓨터만으로도 즐거움을 생산할 수 있게 될까? 만약 그 즐거움을 다시는 되찾을 수 없다면? 그러면 나는 뭘 해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