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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기 싫다. 밥을 먹으면 똥이 나오기 때문이다. 아침에 똥을 눌 때마다 느낀다. 내가 또 이렇게 똥을 싸는구나. 대변이 직장에서 항문을 스치며 나오는 느낌은 정말이지 불쾌하다. 중력이 의해 똥 줄기가 끊어질 때 항문 주위의 잔변감, 풍덩 떨어지는 소리, 허벅지에 튀는 물 입자, 이 모두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불쾌하다. 오늘 아침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똥이 다 나온 줄 알고 휴지로 똥을 닦았는데, 닦아도 닦아도 계속 휴지에 똥이 묻어나왔다. 알고 보니 똥이 다 나온 게 아니었다. 똥 몇 덩이? 가닥? 을 더 누고 다시 휴지로 똥을 닦았다. 정말이지 불쾌하다.
이전에는 크고 굵은 똥을 누고 나면 자랑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I was really proud of my poop. I really loved that one. I took a few pictures with my smartphone before flushing it out. 인생샷이라는 수사에 부족함이 없다. 내 영정사진으로 쓰고 싶을 정도다. 아쉽게도 눈썹이 다 드러나지 않아서 여권사진으로는 쓸 수 없다. 물 내리는데 아까워 죽는줄. 그러나 그것도 옛날 일이죠. 나는 이제 똥에는 관심없다.
내가 밥을 똥으로 바꾸는 기계가 된 것 같다. 내가 그래도 인간인데, 좀 더 고상한 일을 해야 하지 않나? 그저 하는 게 밥 먹고 똥으로 바꾸는 일이라니. 끔찍하다. 밥을 먹을 때마다 생각한다. 이거 또 소화되서 똥으로 나오겠지? 내가 이걸 먹어야 하나? 끔찍해.
사실 밥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밥도 똥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 밥을 먹지 않아도 똥은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계속 안 먹으면 결국 안 나오게 되겠지. 죽으면 똥이고 뭐고 없다.
저는 똥이 싫어요. 제발 똥 안 누게 해주세요.
그러나 소원을 빌 때는 신중할 것. 소원을 들어주는 초자연적 존재들은 마치 훈련 데이터 집합에 과적합된 인공지능과 같다. 인간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잘 이해하지 못한 채로 (혹은 이해해했음에도) 황당한 소원을 들어준다.
- 영원히 살게 해주세요. => 영원히 살지만 나이가 듦에 따라 계속 늙게 됨. 점점 귀도 안 들리고, 걷기도 어려워지고, 눈도 안 보이고 ---걸리버 여행기
- 달리기에서 1등을 하게 해주세요 => 나랑 같이 경주할 예정이었던 아이들이 오늘 아침 모두 사고사 ---바케모노가타리
- 똥 안 누게 해주세요 => 항문과 직장이 없어짐. 똥을 누지는 않지만 똥은 배 안에 계속 쌓임. ---TV동물농장
그러니까 제가 원하는 건, 똥을 안 누는 건데요, 그렇다고 똥이 배 속에 계속 쌓이는 것도 싫어요. 그렇다고 똥이 목에 쌓이는 것도 싫어요. 그렇다고 소화기관이 노폐물 배출을 못 하게 되는 것도 싫어요. 또 뭐가 싫지... 무슨 싫은 게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소원 하나 말하기도 참 어렵네요. 해석의 여지가 많으니.
언제까지 이렇게 맨날 밥을 똥으로 바꾸면서 살아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