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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역시 누텔라에 빵 발라 먹는 게 최고!
나는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누텔라? 누텔라가 뭐지? 한국어의 고유어나 한자어는 아닌 것 같다. 한국어로 번역되기 매우 어려운 서양 철학의 개념인가? 힌두 철학의 개념인가? 이슬람교의 율법을 지칭하는 건가? 적절한 단어를 써서 직관적으로 의미가 전달되도록 번역하는 것이 번역자의 의무이다. 니가 번역하기 귀찮다고 음차하냐? 니가 멍청해서 니 능력 부족으로 음차하냐? 도데체 번역자는 뭘 한 거야? 내가 모르는 개념을 듣고, 나는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원래 사람이란 이해하지 못하면 화를 내는 법이다.
추후에 알았다. 누텔라는 빵을 발라먹는 초코맛이 나는 잼 비슷한 것이라는 것을. 그러면 누텔라 말고 초코잼이라고 하면 되잖아? 도데체 번역자는 뭘 한 거야? 누텔라가 등록된 상표이며(Registered Trademark) 모든 권리가 예약되었다는 것이(All Rights Reserved) 독자의 이해보다 중요해?
나는 누텔라를 먹어본 적이 없다. 오코노미야키와 치치미를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그 차이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고 하자. 오코노미야키는 두껍고, 치치미는 얇다.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기껏해야 다시마는 두껍고 미역은 얇다는 수준의 이해에 도달할 뿐이다. 우동은 굵고 냉면은 가늘고 포는 납작하다는 수준의 이해에 도달할 뿐이다. 햄버거는 작고 피자는 크다는 수준의 이해에 도달할 뿐이다. 아메리카노는 커피전문점에서 팔고 믹스커피는 맥심이라는 수준의 이해에 도달할 뿐이다. 직접 먹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타먹어보니만 못하다고 하지 않는가.
모두가 누텔라를 논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들 같다. 어른들은 항상 말씀하시곤 했다. 무엇이든 경험이 중요하다고. 누텔라에 대한 내 경험 부족이 문제일까. 도데체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뭘 한 걸까. 모두가 먹는 누텔라, 그러나 나는 아직 먹지 못한 누텔라. 누텔라의 세계 밖에 우두커니 서있는 나는 소외된 인간.
부모님의 종교적 신념이 문제일수도 있다. 부모님은 초코를 금기시했고, 우리 집은 초코에 관해서는 일종의 성역이었다. 집 안으로 초코를 들이는 것은 기내에 곤약젤리를 반입하는 것과 같았다. 그 흔한 초코 아이스크림도 우리 집 냉장고에는 없었다. 누텔라가 우리 집에 없었던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아버지는 내게 말했다.
개는 초코를 먹으면 죽는다고! 개한테 초코는 독약이야!
질 수 없었던 나는 응수했다.
구구콘은 초코가 아니라 카라멜이란 말이에요!
초코와 카라멜을 구분하는 일은 똥과 된장을 구분하는 일보다 분명 즐거울 것이다. 그러나 흔히 인용되는 방식과 달리, 똥과 된장을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된장국을 먹는다고 하자. 된장은 언젠가 소화되어서 두부와 호박과 감자와 양파와 함께 똥으로 나올 것이다. 이제 똥 안에는 된장이 섞여있다.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아빠의 논리도 이와 같았다.
카라멜맛 구구콘 안에 초코가 들어있잖아!
거부할 수 없는 논리였지만 나는 굴하지 않았다.
그러면 라면 스프 안에 소고기 분말이 들어있는데 채식주의자는 라면도 먹지 말라는 얘기에요? 우리 모두 다 광우병으로 죽게 생겼는데! 차 타면 사고나서 죽거나 다칠 가능성이 언제나 있는데 그렇다고 차 안 탈 거에요? 기형아가 태어날 수도 있으니 자식 안 낳을 거에요? 그런데 나는 낳았잖아요!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만약 기형아였다면 어쩔 뻔했어! 하지만 내 신경계는 기형이지! 자꾸 자꾸 나오는 이 스트레스 호르몬을 도데체 어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