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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방 목소리

계산 2019. 4. 21. 00:28
옆 방 목소리

왼쪽 방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두 명이 이야기하고 있다. 보통 혼자서 그런식으로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내 경우 머리속에서 혼자서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은다. 그러나 미친 사람은 혼자서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옆 방 사람이 미쳤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두 목소리가 동시에 들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입 하나로는 그런 식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 적어도 두 명이 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두 명이 넘을 수도 있다. 두 명만 말하고, 나머지는 숨죽이고 있을 수도 있다. 여기는 2인실이다. 왼쪽 방도 2인실일까?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종종 숙박 인원수를 속이기도 한다는 것을 안다. 방 정원은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여전히 옆 방 사람이 미쳤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친 사람 두 명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어디까지가 정상이고 어디까지가 미친 것일까? 무엇을 근거로 정상과 미침을 재단할 수 있을까? 나는 정상인가? 아니면 미친 건가? 너는? 우리 아빠는? 왼쪽 방 사람은? 그 때 에스컬레이터 길막한 그 사람은?

우리 아빠는 왜 죽은 걸까? 미쳤기 때문에?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가족들을 버리고 떠날 수 있을까?

왼쪽 방 사람은 왜 그렇게 떠드는 걸까? 미쳤기 때문에? 미치지 않고서야, 시끄러운 말소리에 잠 못 드는 옆 방 사람의 지옥 같은 고통에, 어떻게 그렇게 무감각할 수 있을까?

그 때 에스컬레이터 길막한 그 사람은 왜 그랬던 걸까? 나는 한시가 급했다. 속도를 높여 시간을 단축해야 했다. 내 다리의 힘과(생화학적 소화과정을 통해 생성된다) 기계의 힘을(전기로 생성된다) 모두 빌려 계단을 오를 필요가 있었다. 전자와 후자를 모두 취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러나 둘 중 하나만을 택해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전자로 타협하겠다. 기계가 인간을 이기는 법은 없기에. 기계를 창조한 것은 결국 인간이기에. 그러나 내게는 그러한 타협도 용납되지 않았다.

팥빵이 있다. 팥과 빵을 모두 먹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러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빵으로 타협해야만 한다. 팥이 아무리 달콤하고, 아무리 혀 위에서 사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녹더라도, 빵이 없으면 그 존재는 가치를 잃는다.

그 때 내 앞에서 길막하던 걔는, 내 팥빵에서 빵을 앗아갔다. 빵과 팥을 모두 빼앗아간 것과 무엇이 다를까? 앙꼬 없는 찐빵, 이라며 말하는 이들은, 빵 없는 찐빵에 대해서는 상상하지 못한다. 그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 내게는 현실이었다.

그 때 내 앞에서 길막하던 걔는 도데체 왜 그랬던 걸까?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무자비하고, 잔혹하고, 비인간적일 수 있을까?

목소리는 계속 들렸다. 옆 방에는 단 한 명만 있고, 전화를 하는 중일수도 있다. 그러나 두 목소리의 성량이 비슷하다. 전화는 아닌가?

벽에 귀를 대고 목소리에 집중했다. 여자 목소리였다. 그러나 음성 변조의.가능성이 있다. 일본어였다. 그러나 자동 통역의 가능성이 있다. 일본에서 온 여성 관광객 둘이라는 판단은 하이테크놀로지를 통해 유도된 거짓일 수 있다. 엔지니어에게는 식은 죽 먹기다.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아무리 오랜 시간 귀를 대고 엿들어도,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옆 방에는 아무도 없고, 이미 녹음된 사람 목소리가 재생되고 있을 수도 있다. 방을 하나 내준 후, 옆 방에 무언가 음성을 재생해야만 하는 이유를 대는 일은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원래 무엇이든 가져다 붙이면 된다. 그러나 왜 그가? 본인에게 어떤 이익이 된다고? 그러나 알 수 없다. 다른 사람의 생각은 알 수 없다. 숙박업체 호스트의 의도 역시 알 수 없다.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인지, 다른 무엇인가를 위해서인지, 알 수 없다.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답은 나오지 않으며, 내가 그 과정을 통해 얻는 것은 고통뿐이다.

오른쪽 방에서도 목소리가 들렸다. 여자 목소리다. 중국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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