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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문제를 풀면 스트레스가 풀려요"


정말? 쉬운 문제를 풀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게 아니라?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어려운 문제를 풀면 스트레스가 쌓인다. 풀 수 없어서 스트레스가 쌓인다. 시간을 계속 허비하지만, 여전히 풀 수 없어서 스트레스는 쌓여만 간다.


"너한테는 어려운 문제가 걔한테는 쉬운 문제라서 그래"


라며 걔에 대한 내 상대적 멍청함을 지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주관적인 난이도를 기준으로 말하고 있었다. 내가 말하는 쉬운 문제란, 푸는 사람 본인에게 쉬운 문제이고, 내가 말하는 어려운 문제란, 푸는 사람 본인에게 어려운 문제이다. 걔도 나처럼, 주관적인 난이도를 기준으로 말한 것 아니었나?


생각해보면 보장은 없다. 걔가 주관적 난이도를 논하는 것이 아니었을수도 있다. 그런 것이라면 이해가 간다. 걔가 말하는 어려운 문제란 자기한테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어려운 문제였다. 객관적으로는 어려운 문제였지만, 걔 주관적으로는 쉬운 문제였고, 걔는 주관적으로 쉬운 문제를 쉽게 풀고 스트레스를 풀었다. 걔는 기만자였구나. 나는 기만당했구나. 이제야 비로소 이해가 간다.


그러나 어렵다/쉽다 같은 비계랑적 일상언어로 표현되는 객관적 난이도란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인간은 주관적인 기준을 통해 생각을 표현한다. 무언가를 주장할 때가 아니라, 그저 경험과 느낀 점을 이야기할 때라면 더더욱 그렇다.


사실 '풀다'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풀다1: 결과적으로 풀어내다 (예: 나는 이미 그 문제를 풀었다. 너 이거 풀 수 있어?)

풀다2: 풀려고 시도하다 (예: 나 지금 문제 푸는 중이야. 어제는 하루 종일 문제를 풀었다. 그 때 문제 풀고 있었어.)


이 차이 때문에 내가 걔를 이해하지 못한 걸수도 있다. 걔는 "어려운 문제를 풀1면 스트레스가 풀리"는데, 나는 어려운 문제를 풀2면 스트레스가 쌓인다. 걔도 풀2면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풀1었을 때의 성취감이 모든 것을 보상해줄지 모른다. 그러나 푼1다고 해서 정말 스트레스가 풀리는 걸까? 이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나도 자기소개서에는 "문제를 풀었을 때의 성취감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으니 어쩌니 하면서 헛소리를 늘어놓긴 한다. 그러나 자기소개서는 자기소개서일 뿐이다. 그런 헛소리를 뻔뻔히 써야 하니까 자기소개서는 쓰기 싫은 것이다. 실제로는, 어려운 문제를 풀2때 엄청난 고통을 받고, 그 고통은 문제를 풀1어도 보상받지 못한다. 이제 더 이상 이 문제를 풀2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 풀2면서 허비한 시간에 대한 허탈함, 풀1기 위해 이렇게나 고생했다는 한심함, 같은 문제를 순식간에 푸12는 사람들을 보며 느끼는 열등감; 풀1고 남는 건 그 정도 뿐이다. 애초에 푼2다고 풀1리라는 보장도 없다. 문제가 어려울수록 풀2어도 안 풀1린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그런 적이 있긴 했다. 문제를 풀1어서 너무나 기뻤고, 그 기쁨에 비하면 풀2때의 고통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가 이걸 풀1었다니! 남들보다 잘났다는 우월감에 취해 너무나 기뻤다. 자기소개서도 완전히 헛소리는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문제가 쉬워서 그랬다. 쉬운 문제이니만큼, 풀2때의 고통이 정말 별 거 아니었다.






--------------


사실 "풀1다"와 "풀2다"다 구별해서 쓰기보다는, "풀어내다"와 "풀려고 하다" 로 쓰는 편이 가독성이 좋다. 다만 숫자를 붙여 구분하는 것만큼 의미 분별이 명확하지는 않다.


이 차이 때문에 내가 걔를 이해하지 못한 걸수도 있다. 걔는 "어려운 문제를 풀어내면 스트레스가 풀리"는데, 나는 어려운 문제를 풀려고 하면 스트레스가 쌓인다. 걔도 풀려고 하면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풀어냈을 때의 성취감이 모든 것을 보상해줄지 모른다. 그러나 풀어낸다고 해서 정말 스트레스가 풀리는 걸까? 이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나도 자기소개서에는 "문제를 풀었을 때의 성취감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으니 어쩌니 하면서 헛소리를 늘어놓긴 한다. 그러나 자기소개서는 자기소개서일 뿐이다. 그런 헛소리를 뻔뻔히 써야 하니까 자기소개서는 쓰기 싫은 것이다. 실제로는, 어려운 문제를 풀려고 할 때 엄청난 고통을 받고, 그 고통은 문제를 풀어내도 보상받지 못한다. 이제 더 이상 이 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 풀려고 하면서 허비한 시간에 대한 허탈함, 풀어내기 위해 이렇게나 고생했다는 한심함, 같은 문제를 순식간에 풀어내는 사람들을 보며 느끼는 열등감; 풀어내고 남는 건 그 정도 뿐이다. 애초에 풀려고 한다고 풀어내리라는 보장도 없다. 문제가 어려울수록 풀려고 해도 풀어낼 수 없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그런 적이 있긴 했다. 문제를 풀어내서 너무나 기뻤고, 그 기쁨에 비하면 풀려고 할 때의 고통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가 이걸 풀어냈다니! 남들보다 잘났다는 우월감에 취해 너무나 기뻤다. 자기소개서도 완전히 헛소리는 아니었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문제가 쉬워서 그랬다. 쉬운 문제이니만큼, 풀려고 할 때의 고통이 정말 별 거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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