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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로 댓글을 지웠다. 실수? 이 내가 실수를 했다고? 결국 실수한 내 잘못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 누구나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고를 선택지는 명백하다: 남 탓 하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탓이 아니다. 티스토리가 인터페이스를 개좆병신같이 만들어놔서 그렇다. 아니시발 왜 대댓글을 달려면 거지같은 팝업이 뜨는거지? 그 팝업이 삭제하는지 묻는 팝업하고 비슷하게 생겨서 내가 헷갈렸잖아! 이 개같은놈들은 시대착오적 인터페이스를 개선할 생각은 안 하고 티스토리 계정을 카카오계정으로 통합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지. 이 모든게 다 카카오의 독과점을 위해서야. 이런 악덕 기업 같으니. 진정 사용자 경험을 생각하는 기업이란 정녕 없단 말인가? 플랫폼을 장악해서 불로소득을 챙길 잇속으로 가득한 이들만이 기업의 우두머리란 말인가?
끔찍하다. 끔찍, 끔찍, 끔찍하다. 불의의 사고로 자식을 잃은 슬픔을 정부에 대한 분노로 승화시킨 그들처럼, 나는 댓글을 잃은 슬픔을 카카오에 대한 분노로 승화시켰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카카오 본사에 자살 폭탄 테러 하기.
나는 이 때를 항상 기다리고 있었다. 폭탄은 이미 준비해뒀다. 내일 아침 판교역 주변에서 흰 옷을 입고 가방을 메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수상한 남자를 보면 난 줄 알아라. 카카오 이 용서받지 못할 놈들에게 천벌을 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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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댓글 하나 없어진 일에 일희일비해서 자살 폭탄 테러 계획까지 세우다니, 당신도 참 한심하군요. 그게 언제나 당신의 블러핑이라는 사실은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같은 겁쟁이에게 그게 가능할 리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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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사실 나는 전혀 자살 폭탄 테러를 할 계획이 없다. 모두 거짓말이었다. 쓸데없는 거짓말 그만하고 얌전히 댓글이나 복원해보자. 내가 프로그래밍 고수였다면 브라우저 캐시를 뒤져서 댓글을 복원했겠지만 아쉽게도 나는 프로그래밍 고수가 아니다. 하지만 전혀 아쉽지 않다. 어차피 미래의 지배자는 기술만 아는 공돌이들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은 인문학도가 미래를 지배한다. 나는 내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내 머리속에 있는 인문학 지식을 총동원하여 댓글을 복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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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상대적 비교는 의미없다는 내용)
(대충 자기만족이 중요하다는 내용)
(대충 니체가 하루의 2/3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면 노예라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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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사실 댓글 휴지통 기능이 있어서 댓글 휴지통에서 댓글을 복원 가능하다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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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댓글 하나 없어진 일에 일희일비해서 병신같은 뻘글을 또 쓰다니, 당신도 참 한심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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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한심하다. 그깟 댓글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하나쯤 없어진다고 해도 아무런 차이도 없는데?
사실은 중요했다. 아무도 오지 않는 블로그에 달린 몇 개의 댓글은, 비유하자면, 태양이 작렬하는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에서 우연히 발견한 오아시스 같은 것. 죽어가는 생명을 며칠은 더 연장할 수 있는 물 한 모금과도 같은 것.
나는 관종이었나? 관종, 내가 그렇게 혐오하던 것. 유튜브를 볼 때면 항상 접한다. "구독 좋아요 알림설정 부탁드려요~" 볼 때마다 생각했다. 한심한 쓰레기 관종 같으니. 그냥 묵묵히 영상이나 만들 것이지 그렇게 비참하게 관심을 구걸해야 하나? "댓글 감사드립니다" 댓글 달린게 감사할 일인가? 하지만 네가 감사하는 댓글은 모든 댓글이 아니지. 너는 악플은 싫어하잖아?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더니, 결국 너는 치야호야 받고 싶을 뿐이잖아!
나 역시 치야호야 받고 싶었다. 나 역시 흔한 병신새끼들과 다르지 않았다.
공자는 말했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군자 아니겠느냐고. 그래, 나는 군자가 아니다. 그저 소인일 뿐이다. 하지만 소인인 것은 공자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결국 공자 너도 세상이 너를 알아주지 않는다며 한탄했잖아! 결국 너 나 우리 공자 모두 소인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