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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탕수육 부먹 vs 찍먹과 비슷하다.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아무래도 상관없는 문제. 자식이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어버리거나, 도로에 턱이 있어서 휠체어가 지나다닐 수 없거나, 지인찬스로 빚투한 부동산이 폭락하거나, 항암치료를 이겨내지 못하거나, 내 자식이라고 생각했던 아이의 유전자 검사 결과가 이상하거나, 어머니가 신흥종교에 가산을 탕진하거나, 인터넷의 누군가가 내 글에 악플을 달거나, 믿었던 공동창업자에게 사기를 당하거나, 옆 나라가 핵 개발을 하거나, 오존층이 파괴되거나, 치과의사가 실수로 잘못된 이를 뽑았거나 하는 문제에 비하면, 정말이지 삶에 있어 사소한 문제다. 이 사소한 문제를 과장하여, 부먹이냐 찍먹이냐에 인생 전체가 달린 것처럼 말하여, 긴장의 해소를 유도하고 유머로써 즐기는 것, 그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방식이다.
그러나 나는 다르다. 내게 있어서 비냉 vs 물냉은, 부먹 vs 찍먹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내 삶이 송두리째 달린 문제다. 내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 이것을 포기하느니 내 존재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 나은 것, 이것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쳐 싸울수도 있는 것이, 내게는 물냉 vs 비냉이라는 문제다.
물론 나는 무조건 물냉면이다. 나와 함께하여 물냉면을 고르는 자들은 나의 동지이자 벗이자 협력자이며, 비빔냉면을 고르는 자들은 목숨을 걸고 쳐부숴야 할 적이다.
만약 내가 식당에서 물냉면을 시켰는데 비빔냉면이 나온다면, 그것은 된장찌개를 시켰는데 구더기 반 찌개 반인 음식이 나오는 것과 같다. 그런 모욕을 당한다면 나는 나의 모든 것을 걸고, 점원과 사장을 죽이고, 식당을 불태울 것이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얘기다.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고 그냥 음식을 바꿔 줄 것을 강하게 요구할 것이다. 요구가 묵살된다면 돈을 내지 않고 식당을 나올 것이다.
만약 내가 한달을 굶어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는데 먹을 것이 비빔냉면 뿐이라면, 나는 그냥 죽음을 택할 것이다. 비빔냉면보다는 차라리 죽음이 낫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얘기다. 나는 양념을 덜어내고 비빔냉면을 먹어서 굶주림을 해소할 것이다.
만약 내 자식이 물냉면이 아닌 비빔냉면을 먹는다면, 나는 차라리 그가 내 친자가 아니기를 기도할 것이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얘기다. 나는 그냥 자식이 먹던 비빔냉면 그릇을 집어던지고 말지, 친자가 아니기를 기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빔냉면을 그렇게 싫어하는 이유가 뭐냐고? 답은 무의미하다. 그냥 싫다. 싫은데 뭘 어쩌겠는가? 이유를 탐구하는 것은 불필요한 지적 노동이다. 나는 지적 노동이 싫다.
내게 싫어하는 음식이 뭔지 물은 사람이 있었다.
미영씨는 싫어하는 음식이 뭐에요?
저는 비빔냉면 싫어해요.
와 진짜? 대~박. 저 비빔냉면 싫어하는 사람 처음봤어요! 아하하! 비빔냉면이 싫대! AHAHA!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행동했다. 아하하 하고 웃는 그 목을 비틀어 죽여버렸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얘기다. 내 머리속에서만 목을 비틀어 죽여버렸을 뿐이다. 실제로는
아하하! 저는 비빔냉면이 싫다는 저를 보고 비웃는 마치 비빔냉면과도 같은 비빔냉면을 처음봐요! 이 비빔냉면! 너는 평생 꼭 죽을때까지 비빔냉면만 먹어라.
라고 반응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