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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박원순은 자살했다. 임기 중 그가 돌연 자살한 이유는 간단하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논하며 대한민국 시민사회운동에 한 획을 그어온 그가, 사실은 파렴치한 성 범죄자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밝혀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에. (물론 피해를 주장하는 발언에 대하여 죽은 자는 말이 없고 공소권 없음의 이유로 수사는 이루어지지 않으니 진실은 알 수 없다. 사실 진실이 무엇이든 그게 중요하겠는가? 진실이란 공허한 것이다.) 박원순의 선택은 매우 합리적이었다. 일단 구속되면 자살하기는 매우 어렵다. 자신의 삶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천부인권마저 일축당한 이 나라에서 재판 결과가 나온 후 결정한다는 전략은 사치다. 솔직히 나 같아도 자살하겠다.

 

자살 방법에 대한 보도는 찾아볼 수 없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나? 아니면 목을 매달았나? 아니면 번개탄? 사제 청산가리? 몇 년 전 연예인들의 자살 방법을 상세하게 보도하던 것에 비하면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그가 산 속에서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뭐였을까? 알 방법이 없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맹목적 보도윤리 때문에 알 권리를 잃고 고통받는다.

 

박원순은 극악무도한 성 범죄자지만 나는 박원순을 비난할 수 없다. 무단횡단/음주횡단/무면허운전/음주운전 등 범죄를 저질러온 범법자들이 "모든 무단횡단자들의 다리를 잘라버려야 한다"는 주장에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나는 뜨거운 열정으로 동의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성의 한계를 발휘하여 동의하는 자들이 극소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떻게 자기 자신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나 역시 박원순과 똑같은 추악한 존재다. 내가 지금 현재 성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게 그에 상응하는 권력이 없기 때문이다. 내게 권력만 있다면 완전한 야리마쿠리다. 나에게는 잠재적 성 범죄자라는 이명이 아깝지 않으며 그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내 성 범죄 포텐은 폭발하여 주위의 모두를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트릴 것이다.

 

나는 아닐 것이라 믿었다. 박원순같은 악한과는 다를 것이라 믿었다. 나 스스로를, 내 내면의 괴물을 잘 제어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과거에 일어난 한 사건으로 내 자신에 대한 믿음은 깨졌다. 나는 인간과 인간의 평등을 믿는 박애주의자였고, 스스로가 그런 박애주의자라는 사실을 주변 모두에게 알리고 다녔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앞장서서 불호령을 내렸다. 그런 나를 씹선비라며 비난하는 세력이 있었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내가 올바르고 그들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呼),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이 또한 군자 아니겠는가?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복도에서 지시를 기다리던 후배에게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라는 뜻으로 나는 손짓했다. 한 손을 머리높이로 들고 손가락 끝을 바닥이 향하게 한 채로 손목을 까닥까닥하는 손짓이었다. 어떻게 그런 모욕적인 수신호를! 그 수신호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할 수 있으나,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윗사람-아랫사람의 위계질서를 상징하는 수신호이다. 주로 사람이 개한테 사용한다. 아랫사람을 개 취급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배는 분명 개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평등한 조직문화를 지향한다며 후배에게도 깍듯이 존댓말을 하고 다녔던 내 언행이 가식이자 걷치레이자 위선이었음은 이로써 명백해졌다. 내 마음속에서 후배 따위는 한 마리 개에 지나지 않았다.

 

그 후배에게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빌 수도 있었다. 위선을 인정하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용서를 구하는 행동 역시 위선이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그 수신호가 잘못이라고 생각했다면 애초부터 하지 말았어야 했다.

 

죄를 저지른 후 용서를 빌며 선처를 요구하는 자들도 있다. 이들 모두가 위선자다. 그저 형량을 줄이기 위해 거짓으로 뉘우침을 고할 뿐인 자들이다. 이들이 정말 뉘우치고 있다면 강한 형을 받기를 자원했어야 한다. 나에게 인권을 유린당한 그 후배는 나를 고발하지 않았다. 그 집단의 윗사람이자 권력자이자 강자였던 내게 감히 그런 행동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죄를 뉘우칠 필요도 없었다. 좀 더 정확히는 뉘우침을 연기할 필요도 없었다. 역시 권력을 갖고 볼 일이다. 죄를 지어도 벌을 받지 않으니 너무나 쾌적하다.

 

이후에도 나는 수도 없이 비슷한 식으로 인권을 유린했다. 직장 내 외모 평가에 분노하는 직원을 비웃은 일, 동아리 내 차별 내부고발을 무시한 일, 소수자 배려 운동을 비웃은 일, 국적에 따라 사람을 차별한 일 등등. 이 모든 악행을 저지를 때 나는 예외 없이 박애주의자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권력을 얻으면 얻을수록, 나는 인권을 파괴하고 또 파괴할 것이다. 나는 박원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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