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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피하기

계산 2019. 11. 28. 20:40

출근시간, 그리고 퇴근시간. 나는 이 때가 너무 두렵다. 거리를 걷는 게 너무 두렵다. 치일 수 있기 때문이다. 출근할 때와 퇴근할 때 외에는 건물 안에서 안전하게 생활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는 건물 사이를 옮겨다녀야 한다. 그 사이에는 자동차, 오토바이, 전동킥보드, 자전거 등 빠르고 무서운 것들이 너무 많다.

 

예전에는 게임을 좋아했다. "평생 게임만 하면서 살게 해주세요" 라고 하느님께 기도하곤 했다. 누군가 그 기도를 들어준 걸까? 항상 자동차 등을 포함한 빠르고 딱딱한 물체 피하기 게임을 하면서 사는 기분이다. 부딪히면 뼈가 부러지겠지. 피가 나겠지. 병원 신세를 지게 되겠지. 그런 일이 일어날까 너무 두렵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게임은 이런 게 아니라 야한 게임이었는데. "전교 1등이 되게 해주세요" 하고 빌었더니 뒤에서 전교 1등이 된 기분이다.

 

기도하는 방법이 잘못된 걸까? <시크릿>에 따르면 우주의 지니는 강렬하게 상상한 것만 들어준다고 했었지. 그러나 나는 항상 야한 게임을 강렬하게 상상했었는데.

 

곰플레이어의 곰발바닥 마크를 클릭하면 "닷지"라는 총알 피하기 게임이 나왔다. 그거 한 10분 하고 평생 더 이상 하지 않았었는데.

 

죽음이 두렵지는 않다. 차에 치여서 죽어도 괜찮다. 그러나 대개 교통사고의 결말은 병원행, 병원비로인한파산, 팔을못쓰게됨, 다리를못쓰게됨, 하반신마비, 전신마비 등이지 죽음이 아니다. 나는 전신마비가 너무 두렵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전신마비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찾을지 모르겠다. 스티븐 호킹은 그 상태에서도 우주의 진리를 탐구했어. 전신마비되면 더 이상 일 안 해도 돼. 더 이상 건물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돼. 더 이상 차에 치일 걱정하지 않아도 돼. 차에 치일 걱정 없이 우주의 진리만 탐구하면 된다니, 꿈같은 이야기네요.

 

그러나 저는 우주의 진리에는 관심 없어요. 말이 좋아서 우주의 진리지, 그거 그냥 편미분방정식을 풀 뿐이잖아요. 나는 좆같은 편미방 같은건 풀기 싫어.

 

고속으로 움직이는 차들을 뚫고 문을 열고 들어오면 안도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 안도감도 순간뿐, 또 고속으로 움직이는 차들을 뚫고 가야만 하는 시간이 찾아오겠지.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누군가한테 내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는 비웃으며 말했다. "건물이 무너질지도 모르는데 그건 안 무섭냐?" 당시 건물 안에서 이야기하고 있었고, 나는 곧바로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3년 동안 노숙 생활을 했다. 거리는 추웠지만, 건물이 무너지는 것보다는 나았다. 3년을 그렇게 생활하다 우연히 사상률 통계를 접했다. 건물 무너져서 사상률은 교통사고 사상률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수준이었다. 곧바로 노숙 생활을 그만뒀다. 확인되지도 않은 정보를 진짜인 것처럼 내게 전한 그를 나는 아직도 증오한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고 3년 동안이나 그런 생활을 한 내가 너무 불쌍하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 일을 떠올릴 때마다 아직도 온몸이 떨린다.

 

내가 처음부터 거리를 걷기를 두려워했던 것은 아니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 죽음이 언젠가 자기 자신에게도 반드시 찾아올 거라는 걸 분명 알지만, 그런 건 잊고 당장 현실에 닥친 작은 문제를 고민하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그렇게 교통사고의 두려움을 잊고 살아가고 있었다.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은 다르지 않은가. 그렇게 살던 중 엄마가 교통사고에 닿았다. 발인을 할 때 시신에게 말했다. "엄마 이제 차 타고 화장장에 갈 건데 엄마처럼 교통사고 날까봐 너무 두려워요"

 

출근도 퇴근도 하지 않고 집에서만 사는 방법도 있다. 실제로 엄마가 죽은 이후 많은 기간을 그렇게 살았다. 그러다 저축해놓은 돈이 다 떨어졌다. 이제 어쩔 수 없이 일해야만 한다. 몇년간 일해서, 평생 쓸 돈을 다 모아놓은 후, 그 이후는 절대로 집에서 나가지 않을 계획이다. 몇년만 고생하면 거리의 끔찍한 공포를 더 이상 겪지 않아도 된다.

 

전에는 퇴근하기가 정말 너무 싫어서 직장에서 잔 적도 있다. 그 다음날에 출근도 하지 않아도 되어서 너무 좋았다. 그렇게 한동안 직장에서만 생활했더니 해고당했다. 몸에서 냄새가 난다는 이유였다. 결국 일하려면 집과 직장을 왔다갔다할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재택 근무를 하려고 했었다. 누구나 월 300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내용의 블로그 글을 보고 시작했지만, 얼마 남지 않은 가진 돈만 더 까먹을 뿐이었다.

 

몇년만 더 이 짓을 하면 평생 안전한 생활 보장! 을 외치며 하루하루 출퇴근하고 있지만, 자꾸 회의감이 든다. 안전한 생활이 정말 이렇게까지 해서 얻을 가치가 있는 것인가. 이전에 짧은 기간이나마 안전하게 생활했던 때, 나는 정말 삶에 만족하고 있었나. 초록불에 횡단보도를 건널 때면 생각한다. 차라리 정지선 앞에 정차에 있는 저 차가 급발진해서 나를 들이받으면 좋을 텐데. 그러나 병원에서 깨어날 걸 떠올리고 그런 생각도 관둔다. 스포츠차도 아닌데 급발진해봤자 얼마나 빨라지겠어.

 

빵을 먹을 때는 빵에 바이러스가 들어있을까봐 두렵다. 감염될 경우 증상은 고열, 오한, 두통, 설사, 소화불량, 대상포진 등등. 그러나 그 확률이 얼마나 되겠어요? 확률로 삶을 논하지 마세요. 어차피 너를 만든 정자가 수정될 확률은 십분의 일 미만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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