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를 먹을 때마다
솔직히 맥도날드를 먹을 때마다 열패감을 느낀다. 열패감? 적절한 단어를 고른건지 잘 모르겠다. 열패감이 아니면, 배덕감? 우울감? 쾌락? 좌절? 분노? 들끓음? 연기? 화락화락? 붕붕? 슁슁? 슝슝? 씨발? 내 기분을 표현할 말을 잘 찾지 못하겠다. 하긴 단어 하나에 기분을 압축해버리는 건 현대의 모든 과학기술을 종이 한 장으로 서술하는 것과 같은 일이지. 즉, 불가능하다는 말이죠. 단어 하나는 너무 짧고, 종이 한 장은 너무 작다.
예전에 여자친구와 교환일기를 썼었다. 그 때는 지금처럼 디지털 기술이 발달한 시대가 아니어서 종이 공책에 볼펜으로 일기를 썼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일기장을 펼치고 펜을 들면 머리속이 하얘졌다. 아 진짜 내가 쓸 말이 없어서 진짜. 언제 한 번 글 잘 쓰는 지인에게 대필을 부탁한적도 있었다. 순수한 마음이 묻어나오는 좋은 글이라 그런지 여자친구가 너무너무 좋아하더라. 근데 나중에 대필한 걸 알고 나서 너무너무 화냈다. "내가 사귀는 게 너지 네 지인이냐?" 라며. 누가 쓰든 어차피 편지는 편지인데 뭘 그렇게 화내는건지. 여자의 마음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래서 대필도 안 되고, 책상 앞에 앉아서 쓸 말을 고민하다보니 머리가 아파왔다. 그러다 깨달았다. 멋진 글을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게 중요해! 나는 망설임 없이 휘갈겨 썼다. "좋아해". 여자친구가 너무너무 좋아했다. 음, 역시 마음을 잘 표현하는 게 중요하군.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 다음다음날도, 나는 같은 말로써 변하지 않는 내 마음을 표현했다. 8월 30일 좋아해. 8월 31일 좋아해. 8월 32일 좋아해. 8월 33일 좋아해. 8월 34일 좋아해. 자꾸 그렇게 하니까 여자친구가 성의가 없다며 화를 냈다.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여자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교환일기 이야기를 왜 꺼냈냐면, "짧은 단어 한 마디로 무언가를 표현하기는 불가능하다" 라는 걸 말하고 싶어서요. 맥도날드를 먹을 때의 제 심정 역시 짧은 단어로 압축할 수 없어요. 섀넌의 정보이론에 따르면 짧게 압축하면 손실이 일어날 수밖에 없죠. 그러니까 압축 하지 말고 그냥 길게 씁시다.
맥도날드는 우리나라 음식이 아니에요. 우리나라 사람은 신토불이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우리 것이 아닌 맥도날드를 먹을 때면, 정말 뭔가 죄책감이 느껴져요. 우리 선조들이 이러려고 저희들을 낳아 기른 걸까요? 선조들께서 하늘나라에서 자손들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실까요? 예끼 이놈들! 전통문화는 어디가고 어디서 굴러들어온지도 모를 맥도날드가!
하지만 맥도날드는 정말 맛있어요. 너무 맛있어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음식인 김치하고 비교하면, 음, 저는 평생 김치만 먹어야 한다면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자살하겠지만, 평생 맥도날드만 먹을 수 있다면 어떤 역경도 이겨내고 용기를 가지고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맥도날드와 함께라면 저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에요.
맥도날드가 이렇게 맛있지만, 사실 저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느끼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야채와 빵과 고기패티를 동시에 씹으면 소스와 뒤섞여 정말 환상적인 맛이 나는데요, 이 맛, 정말 환상적이지만, 말 그대로, 그저 환상일 뿐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태평양 건너 저 멀리멀리 있는 나라의 환상이죠. 환상일 뿐이라는 걸 아니까 어딘가 불편한 느낌이 들어요. 마치 하루종일 유튜브를 보면서 시간을 낭비해버린다면, 물론 유튜브 시청이 너무너무 즐겁지만, 무언가 죄책감이 드는 것처럼요. 도데체 무슨 느낌일까? 한번뿐인 인생을 똑바로 살고 있지 않다는 죄책감? 맥도날드가 아무리 맛있어도 우리 것이 아니라는 이질감? 모르겠다.
사실 알고 있다. 맥도날드는 쓰레기음식(정크푸드)이다. 먹으면 먹을수록 건강해지는 비빔밥과 김치에 비하면 정말 쓰레기라는 말이 어울려. 저런 트랜스지방 덩어리, 줘도 안먹음.
하지만 맥도날드는 너무 맛있단 말이에요. 하지만 맥도날드는 우리 것이 아니야. 도데체 왜 맥도날드는 우리 것이 아닌 걸까.
미국에서 태어날 걸 그랬다. 그랬다면 김치가 아닌 맥도날드가 신토불이 우리 음식이었을 텐데. 맥도날드를 먹을 때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발명한 선조들의 지혜에 감탄하고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정말 진심을 다해 식사때마다 "감사합니다" 라며 기도드릴 수 있었을 텐데. 도데체 나는 왜 어째서, 미국에서 태어나지 못해서, 맛대가리 하나도 없는 김치를,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느니 어쩌니 하면서 억지로 먹어야 하는 걸까. 도데체 왜, 이렇게 맛있는 맥도날드를 먹을 때마다, 김치가 아닌 걸 먹는다는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걸까. 나도 아무 생각 없이 맥도날드를 즐기고 싶어.
나는 어째서 2등 나라의 2등 국민으로 태어난 걸까. 2등 나라의 국민으로서 1등 나라의 음식을 먹으며 정체성의 혼란을 느껴야 하는 걸까. 나는 정말 1등 나라의 1등 국민들이 부럽다. 그들은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1등 음식을 먹으며 살 수 있을 텐데.
하긴 그래도 우리나라는 2등이라도 하지, 3등, 4등, 5등, 6등, 7등, 8등, 9등, 10등, 11등, 12등, 13등, 14등, 15등, ...... (중간생략) ...... 198등, 199등, 200등 하는 나라들도 있으니까요. 오히려 2등 나라에라도 태어난 걸 기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김치는 정말 맛있는 음식이에요, 비록 2등일지라도.
저는 이미 2등 나라의 2등 국민으로 태어나버렸어요. 이미 정해진 사실은 바꿀 수 없어요.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1등 나라의 1등 시민으로 인정받는 것은 불가능하겠죠. 제가 무슨 짓을 해도, 김치가 바로 나의 음식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