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남자 반바지 가능합니다
공무원 남자 반바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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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shorts/cBhtR7C1lUg
대충 충주맨이 나와서 공무원 사회의 암묵적 복장 규범에 대해 즐겁게 한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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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들은 전반적으로 충주맨에 공감하는 편.
그러던 중 다음 댓글-대댓글-대대댓글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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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장 뭐가 되고 안되고 따지는거보다 스스로 TPO를 생각해보면 된다. 복장으로 지적당하는 사람은 지능 이슈 50프로 정도 있음.
오히려 남 복장 지적하는 사람이 지능 낮은거아님?
님이 어려서 잘 모르는거 같음. 복장은 예의와 아주 밀접하게 관련 있음. 관혼상제와 관련해서는 말할것도 없고, 업무적으로는 고객을 상대하는 업종의 복장은 고객한테 신뢰와 매너의 상징이며, 심지어 복장이 자유로운 IT회사 직원도 외부 업체, 상사, 또는 다수의 직원과 미팅을하거나 발표할 경우 갖춰입어야 하는게 상식임. 그밖에 파티, 문화예술관람, 식당 관련해서도 복장 매너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곳이 있음. 이 같은 복장 매너를 지키지 않아 받게되는 불이익이나 나쁜인식은 본인뿐만 아니라 같은 일행이나 공동체에 속한 사람도 같이 받게 되는거임. 그러니 복장 지적은 "남한테 피해주지 마라"라는 뜻인거지 "복장 맘에 안든다"는 뜻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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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뭔가 좀 걸려서, 장시간 심각하게 진지하게 고민해보았음.
결론은 다음과 같음.
A1. 웩슬러 지능검사 등 극도로 조작적으로 정의된 협의의 지능이라는 의미에서 복장으로 지적당하는 사람은 지능 이슈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함. 그러나 광의의 지능이라는 의미에서 복장으로 지적당하는 사람에 지능 이슈가 있을 것임에 동의함. 다만 데이터로 뒷받침된 결과에 강하게 인지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고 삶의 경험에 비추어 보고 하는 약한 동의임. 복장으로 지적당하는 사람은 실제로 눈치로 분위기를 잘 읽지 못하는 등 사회지능이 떨어질 여지가 있음. 또는 심리학 용어로 말하자면 타인에 대한 마음의 이론 (theory of mind) 이 약할 가능성이 있음. 물론 타인이 불쾌할 것을 알고서도 자신의 자유와 권리가 더 중요하기에 그냥 마음대로 입을 수도 있음. 또는 단순히 자신의 자유와 권리가 더 중요하다기보다, 개인 일반의 자유와 권리가 더 중요하기에 그냥 마음대로 입었을 수도 있음.
A2. 다음에 서술할 내용에 의해, 그 유튜브 댓글러는 또한 광의의 지능 이슈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됨. 이는 사회지능보다는 논리지능에 대한 것임. 그러나 이 기준은 다소 가혹할 수 있음. 왜냐하면 이 기준으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지능 이슈가 있을 것이기 때문. 적어도 복장과 사회지능이라는 관점보다는 더 가혹한 기준이 될 것.
A3. 그 유튜브 댓글러의 논증은 순환함.
> 복장을 지적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렇기 때문에 각종 사회적 상황에서는 복장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복장을 지적하는 것은 정당하다.
자신이 방어하고자 하는 주장을, 바로 그 방어하고자 하는 주장 자체로 방어하고 있음.
A4. 다만 순환이 아닌 것으로 볼 여지 역시 있음. 예를 들어 다음 상황을 생각해보자.
> 어떤 학생이 학교를 대표해서 행사에 참석해야 한다고 하자. 학교 측에서는 학생에게 학교의 격식과 품위를 지키기 위해 복장에 대한 안내를 해준다.
이는 순환이 아님. 왜냐하면 복장을 지적하는 주체 (학교) 와 복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체 (행사) 가 다르기 때문. 위 3번의 경우에 대입해보면 이렇게 됨.
> (행사가) 복장을 지적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렇기 때문에 행사에서는 복장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가) 복장을 지적하는 것은 정당하다.
문제는 복장을 지적하는 주체와 복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체가 같을 때 발생함. 이 경우 자신의 복장 지적 근거를 가져올 외부 권위가 없음.
A5. 어떤 주장이 A3에 해당하는지, 또는 A4에 해당하는지 판단하기 위한 하나의 기준은 다음과 같음. 보통 주장자가 학교의 역할을 하고, 사회적 인식이 행사의 역할을 함.
> 주장자 (학교) 는 사회적 인식 (행사) 의 정당성에 동의하는가?
동의한다면 A3 순환이고, 동의하지 않거나 중립이라면 A4 임.
위 유튜브 댓글의 경우 전반적인 논조를 볼 때 동의한다고 생각됨.
다만, 맨 끝 주장만 문자적으로 집중해서 읽으면, 그렇게 보지 않을 여지는 있음. 그러나 맨 끝 주장 자체는 전반적인 논조와 어긋나있다고 생각됨.
> 이 같은 복장 매너를 지키지 않아 받게되는 불이익이나 나쁜인식은 본인뿐만 아니라 같은 일행이나 공동체에 속한 사람도 같이 받게 되는거임. 그러니 복장 지적은 "남한테 피해주지 마라"라는 뜻인거지 "복장 맘에 안든다"는 뜻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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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이나 A2는 실질적으로 인신공격에 가깝고 안 중요함.
A3이 핵심임. 가장 짧지만 가장 중요하고, 가장 떠올리기 어려웠음.
그 유튜브 댓글러 역시 이러한 점에 대해 전혀 고민해보지 않았을 것임.
원래 논리적 오류는 쓰는 사람도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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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순환논법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게... 고딩때인가... 벌써 한참 지났군요. 기억을 되돌아보면 디씨 무신론 갤러리에서 처음 본 것 같네요. 당시에 엔하위키를 검색해서 내용을 찾아봤던 것 같습니다. 근데 그 때 당시 저는 생각했는데,
> 이건 그냥 논증의 구조에 대한 것이지, 이 때문에 주장이 틀렸다거나, 전혀 가치가 없다거나,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잘 짜인 순환논법은, 그 자체로 훌륭한 논증일 수 있지 않은가? 물론 사실 느낌적인 느낌으로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지만, *순환 구조를 보이는 논증은 개병신쓰레기다* 라는 명제를 엄밀히 증명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다음 설명을 듣고 어느 정도 납득했습니다.
> 당장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컵에 따라 놓고 절을 1000번 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유는 신이기 때문이다. 우유가 신인 이유는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컵에 따라놓고 절을 1000번 해야하기 때문이다.
임의의 주장이 순환논법으로 정당화될수 있다는 이야기군요. 그러니까 순환논법은 개병신쓰레기다... 상당히 그럴듯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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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순환이란 걸 알아차리기가 이렇게 어려웠을까. 고민해봤음.
B1. 같은 것에 다른 용어를 쓰거나 다르게 서술함
- 갖춰입어야 하는게 상식이다
- 신뢰와 매너의 상징이다
B2. 진짜 정보가 (규범적이지 않은 기술적인 의미에서) 섞여 들어옴
- 복장 매너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곳이 있다
- 본인뿐만 아니라 일행이나 공동체에 속한 사람도 피해를 받는다
B3. 맥락과 전반적인 논조상 A3을 주장하는 것이지만, A4를 주장하는 것처럼 썼음.
- 이 같은 복장 매너를 지키지 않아 받게되는 불이익이나 나쁜인식은 본인뿐만 아니라 같은 일행이나 공동체에 속한 사람도 같이 받게 되는거임.
- 그러니 복장 지적은 "남한테 피해주지 마라"라는 뜻인거지 "복장 맘에 안든다"는 뜻이 아님.
마지막인 B3이 핵심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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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걸려서 논리적 오류를 찾았고, 이게 왜 이렇게 찾기 어려운 오류였는지 분석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런 걸까요? 지금까지 모두 *이 유튜브 댓글은 오류* 라는 전제하였습니다.
그러나 논리적 오류를 찾기 어려웠던 것은, 사실은 오류는 어디에도 없으며, 없는 오류를 창조해내기 위해, 제가 정교한 지적 기교를 부렸다는 뜻은 아닐까요?
그러나 오류가 실재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왜 저는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던 걸까요?
복장을 지적당해 괴로웠던 과거의 경험 때문에? (사실 별로 없음)
논리적 모순을 보면 참을 수 없는 강박 때문에? (사실 처음에는 논리적 모순이 안보였음)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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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말 오래 걸려 분석을 하고 이 글을 썼습니다. 뭐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날들에 비하면 짧은 기간이지만, 저 유튜브 댓글러가 투자한 시간에 비하면 그럴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추정입니다.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저 댓글러 또한, 수많은 세월을 들여, 문장을 깎아가며, 논증을 구성했을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뭐 너무 불가지론으로 빠지지 말고, 그냥 상식적 판단을 해봅시다. 편견을 상식적 판단이라는 이름으로 휘두르는 거 아니냐? 고 하실 수도 있지만... 네 맞습니다. 제 독단과 편견입니다.
제 상식이자, 독단이자, 편견에 따르면, 저 유튜브 댓글러는 시간을 많이 쓰지 않았습니다. 저만 비대칭적으로 많은 시간을 썼어요.
실제 전쟁에서 값싼 드론을 써서 상대의 미사일이나 대포를 소모하게 하는 전략이 사용된다고 합니다. 드론에 당한 미사일이 된 기분입니다.
실시간 논쟁이었다면, 저는 참패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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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에 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A는 전도사입니다. 사이비종교적 주장을 합니다.
B는 비판자입니다.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주장을 합니다.
제가 A역할, 상대가 B역할을 맡았습니다.
실시간 논쟁에서, 저는 상대를 압도했습니다. 저는 청산유수로 논증을 뽑아냈고, 상대는 말을 더듬기 바빴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B가 견디지 못하고, 전략을 버렸습니다.
논리적인 주장을 한다는 전략을요.
그 순간부터 제 압도적 우위는 사라졌습니다.
논리는 정말, 매우 고통스럽군요.
논리는 버려야 할 자질이고, 비논리는 배워야 할 자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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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생각해보니 A3은 과했네요. 순환으로 그 유튜브 댓글러의 주장을 재구성한 건 과했습니다. 예, 역시... 발견하기 어려운 논리적 오류를 발견했다는 건 위험 신호였던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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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분석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원 유튜브 댓글은 다음과 같이 재구성됩니다.
C1. 각종 사회적 상황에서 복장은 중요하다.
C2. 그러므로 복장 지적은 정당하다.
C1은 경험적 관찰입니다. C2는 규범적 주장입니다.
이는 논리적이고,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오직 A4의 관점에서만요.
다만 전반적인 맥락상, 원 글쓴이는 C1 을 단순한 경험적 관찰로만 보지 않고, 규범적 주장으로도 보는 것 같네요. C1을 경험적 관찰로 보면 자명합니다. 다만 C1이 규범적 주장이라면 별개의 정당화가 필요하겠죠. 그리고 그 정당화는 원 댓글에서 빠져있습니다. 그게 약점이군요.
또한 C1을 경험적 관찰로 볼 때의 C2와, C1을 규범적 주장으로 볼 때의 C2는 다릅니다.
C2a. 복장 지적은 정당하다. 이는 복장을 입는 당사자와 그 주변 사람에 봉사한다.
C2b. 복장 지적은 정당하다. 이는 사회규범에 봉사한다.
그리고 C2b는, 순환을 만들죠. 그러나 논증으로서의 순환은 아니고, 사회규범의 자기강화 순환인 것이죠.
사실 생각해보면 C2a 도 약하게는 순환에 일조한다고 볼 수도 있죠. 침묵은 권력을 영구화한다라는 관점에서는요.
그리고, 순환이 깨지려면, 다음과 같은 주장이 필요하겠죠.
D1. 각종 사회적 상황에서 복장은 중요하지 않다. (규범적 주장)
D2. 그러므로 복장 지적은 부당하다.
D1의 근거로는, D0가 있겠군요.
D0. 복장 규범은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고, 근본적으로 무작위적이다. (경험적 사실)
이는 규범이 아닌 경험적 사실로서 주장되어야 하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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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순환이 있긴 해서, 규범의 경험적 순환을 논증의 순환으로 제가 착각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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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시행착오를 거쳐 결국 올바른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시행착오를 거쳤다는 사실이, 오히려 결국 더 복잡하교 교묘한 아무 쓸데없는 논리를 짜냈다는 반증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