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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 글쓰기

계산 2023. 2. 11. 03:48

창의력이 넘쳐난다. 이렇게 넘치다가 뻥 터질지도 모른다. 어딘가에 써야 한다. 어디에 쓰면 좋을까? 글쓰기. 글쓰기를 하자. 무엇을 쓰면 좋을까? 소설을 쓰자. 요즘 유행하는 헌터물이 좋을 것 같다.

 

헌터물 같은 거 써서 창의욕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아? 중요한 건 네 창의력 발산이 아니라 독자의 입맛에 맞추는 거란다. 안 그러면 연독률은 떨어지고 정산금도 점점 떨어져만 가겠지. 창의적 글쓰기 같은 병신같은 소리 하지 말고 그냥 검증된 클리셰를 따르세요.

 

나는 돈 때문에 글 쓰는게 아니야. 정산금 같은 건 상관없어. 돈 때문에 예술을 하는 게 아니야.

 

예술 같은 소리하네. 순문학 하는것도 아닌데 무슨 병신같은 소리야.

 

순문학은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어. 나는 헌터물을 쓸거야, 창의적으로.

 

 

 

***

 

헌터법

제10조(헌터의 의무)

①능력을 각성한 자는 국민을 지키기 위해 마수들과 싸워야 한다.

②능력을 각성했음에도 의무를 저버린 각성자는 사형에 처한다.

 

2023년 대한민국 서울, 나는 오늘도 목숨을 걸고 게이트 안에서 마수들과 싸운다.

 

좋아서 싸우는 게 아니다. 안 싸우면 사형당하니까 이러는 거지. 악법도 이런 악법이 없다.

 

좆같은 좆반인 놈들. 좆반인이 마수와 싸울 순 없으니 각성자들이 희생해야 한대나 뭐라나.

 

각성자라고 마수가 안 무서운 줄 아나? 나는 마수가 진짜 무서워 죽겠다.

 

각성자라고 별로 대단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내 능력은 머리카락이 남들보다 10배정도 빨리 자라는 능력이다. 전투에는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

 

다른 각성자들도 대부분 나와 별로 다르지 않다. 손가락이 1cm 정도 길어지는 능력, 시력이 1.5정도로 좋아지는 능력, 위액 분비가 2배가 되는 능력, 안구가 건조해지지 않는 능력... 이런 능력으로 어떻게 마수랑 싸우냐고?

 

별거 없다. 그냥 지급받은 전투방패로 마수의 공격을 막고, 맨손으로 때린다. 위험하지 않냐고? 존나게 위험하다. 내 팔은 이미 상처투성이다. 현대 화기는 마수에게 듣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하긴, 가끔 있다. 불꽃을 발사하는 능력, 괴력을 내는 능력, 음속으로 달릴 수 있는 능력 같은, 실제로 전투에 도움이 되는 대단한 능력들을 가진 놈들이. 그런 각성자들이 S랭크를 받는 거겠지.

 

참고로 나는 B랭크다. 능력은 별거 없지만, 신체 건강한 젊은 남자라는 이유로 B랭크다.

 

C랭크 이하는 여자, 어린이, 노약자, 환자, 장애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면, 나같은 B랭크 헌터 말고, S랭크 헌터가 마수들과 싸우면 되지 않냐고?

 

헌터법

제10조(헌터의 의무)

①능력을 각성한 자는 국민을 지키기 위해 마수들과 싸워야 한다.

②능력을 각성했음에도 의무를 저버린 각성자는 사형에 처한다.

③단, 위 ②항의 각성자 중 S랭크 헌터는 제외한다.

 

진짜 악법도 이런 악법이 없다. 권력을 가진 S랭크는 법에 대한 영향력도 막강하다. 자기들 멋대로 법을 만든다.

 

덕분에 S랭크는 뒤에서 놀고 나같은 허약한 B랭크가 목숨 걸고 마수들과 싸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게이트 안에서 각성자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각성자가 되는 건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각성자는 의무적으로 헌터가 되어야 하고, 헌터 월급은 최저시급보다 조금 많은 정도.

 

예산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단다.

 

겨우 이런 쥐꼬리만한 급여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니.

 

 

 

***

 

나는 그 날도 마수들과 싸우고 있었다.

 

B랭크 헌터인 내게 할당된 게이트는 1주일에 3개. 그리고 이 게이트가 이번 주의 3번째 게이트다.

 

이 게이트만 잘 닫으면, 이번 주는 쉴 수 있다. 그런 일념으로 마수들과 싸워나갔다.

 

마수들의 처리가 끝나갈 때쯤

 

삐이이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트랩! 트랩이다! 조심해!"

 

이상한 경고음 소리가 들리고 동료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서 있던 바닥이 무너저내렸다.

 

아래로 떨어지며 생각했다.

 

뭐지? 함정인가? 이런 건 처음 보는데.

 

나는 이대로 죽는 건가?

 

 

 

 

***

 

눈을 뜨니 낯선 천장이 보였다.

 

허구한 날 인터넷 소설을 보는 게 취미이던 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빙의한 것 같다.

 

빙의? 빙의라고? 그러면 나는 이제 더 이상 마수들을 때려잡지 않아도 되는 건가? 어떤 운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거지?

 

주위를 둘러보니 중세풍의 방이다. 어디로 빙의한 거지? 내가 읽었던 소설이나 게임 중에 이런 비슷한 게 있었나? 누구로 빙의한 거지?

 

"아, 아~"

 

목소리를 내 보니 아름다운 여자 목소리였다. 빙의하면서 TS된 건가?

 

주변에 있던 거울을 통해 보니 역시나, 엄청난 미소녀였다.

 

음... 이제부터 뭘 해야 하지?

 

일단 어느 창작물에 빙의했는지부터 알아내야 할 것 같다.

 

아, 그러고보니 상태창 같은 건 없나?

 

 

 

 

***

 

"상태창! 상태창! 상태창!"

 

"오, 박씨, 일어났구먼."

 

"상태창? 무슨 잠꼬대인가? 정신 차리게, 박씨"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바닥에 누워있었고 주위에는 게이트에서 마수들을 사냥하던 동료들이 모여있었다.

 

뭐지? 그럼 빙의는?

 

:"박씨, 무슨 꿈이라도 꿨나?"

 

꿈이라고? 그러면 TS미소녀는? 나는 무시무시한 마수들이 기다리는 현실로 돌아온 건가?

 

"어떻게 된 건가요?"

 

"아무래도 트랩에 빠진 모양이야."

 

"트랩이요?"

 

동료들이 설명해주기를, 게이트 안의 마수들을 다 처리해 갈 때쯤 흔치 않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바깥에서 볼 때에는 보통 땅이 꺼지면서 헌터들이 빨려들어가는데, 트랩에 의해 실종 처리된 헌터들이 생환한 경우는 없다고 한다.

 

"어떡한담..."

 

TS미소녀가 되는 줄 알고 좋아했는데 현실은 시궁창이다. 트랩에 갖히다니, 이제 죽기만을 기다리면 되는 건가?

 

"일단 저쪽에 길이 보이니 저쪽으로 가보세"

 

동료들은 어두컴컴한 골목을 탐험하기로 했고, 별 수 없으니 나도 따라나섰다.

 

 

 

 

 

***

 

???

 

뭐지?

 

낯설지만 뭔가 낮익은 중세풍의 천장이 보인다.

 

혹시?

 

"아~"

 

목소리를 내 보니 역시나, 아름다운 미성의 여자 목소리다.

 

주변에 있는 거울로 가서 보니 역시나, TS미소녀가 보인다.

 

영문을 모르겠지만 아까 그 세계로 빙의한 것 같다.

 

음... 뭘 해야 하지? 아, 아까 상태창이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확인하려고 했었지.

 

 

 

 

***

 

"상태창! 상태창! 상태..."

 

"오, 박씨, 깨어났구먼"

 

"갑자기 쓰러져서 걱정했네."

 

뭐지? 왜 또 돌아온 거지? 아무래도 빙의에서 깨어난 것 같다.

 

나는 이런 비참한 현실은 싫은데. 다시 빙의세계로 돌아가고 싶다.

 

뭘 해야 갈 수 있지?

 

생각해봐도 방법이 없으니, 일단 동료들을 따라서 걷기로 했다.

 

일행은 나까지 합해서 6명이다. A랭크가 2명, B랭크가 4명이다.

 

A랭크 중 1명은 특전사 출신이고 1명은 헬창이다. 역시 A랭크인건 이유가 있는거겠지.

 

걷다보니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은가..."

 

"...은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음성은 또렷하게 변해서 들려왔다.

 

"...S랭크가 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