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외부인의 출입을 금합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외부인의 출입을 금합니다
정문 앞에 쓰여있는 문구입니다. 그러나 정말 이상합니다. 도데체 무엇을 어떻게 금하겠다는 걸까요? 저는 외부인인데, 정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고, 그리고 정문을 통해 나왔습니다. 외부인 신분으로서 입과 출을 모두 한 것이죠. 그러나 그 누구도 저를 막지 못했습니다. 도데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혼란스럽습니다.
자네가 지적한 것은 이 시스템의 취약점이라네. 정말 똑똑하군. 그렇게 쉽게 취약점을 간파해낼 줄이야. 자네 말대로, 우리는 외부인인 자네의 출입을 막지 못했어. 외부인의 자발적 협조에 의존하는 시스템은 모두 비슷한 취약점을 갖고 있다고 봐도 된다네. 이 취약점만 잘 인지하고 있다면, 어린아이라도 뚫을 수 있는 시스템이지. 나는 자네가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있네. 그 능력 관련하여 내 부탁을 하나 하겠네. 본인에게 능력이 있더라도, 부디 그 능력을 악용하지 말게. 부디 그 능력을 남을 위해 쓰기를 바라네.
그렇습니다. 그 말대로입니다. 저는 똑똑합니다. 범인들이라면 생각하겠죠.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외부인의 출입을 금한다고? 그렇다면 나는 외부인이니 들어갈 방법이 없겠구나." 그러나 저는 다릅니다. 시스템이 유도하는 사고의 맹점을 정확히 짚었고, 관점을 바꾸면 명백한 취약점을 찾아내었습니다. 저는 이를 이용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화장실에 똥을 많이 싸서 변기를 막을 수도 있고,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아무데나 버릴 수도 있고, 불을 지를 수도 있습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겠나요?
그렇군. 자네는 자발적 협조에 의존하는 시스템의 약점을 잘 파악하고 있군. 그런 사람에게 "부디 그 능력을 악용하지 말게" 라며 부탁하다니, 나도 멍청했군. 부탁이란 자발적 협조에 의존하는 것이지. 자발적 협조 요청이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 다시 한번 자발적 협조를 요청하다니, 실책이라 부르지 아니할 수 없군. 마치 돈이 없어 빵을 먹지 못하는 자에게,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어라" 고 하는 것과 같군. 고기 역시 돈이 필요함은 명백할진대.
이제야 본인의 실수를 깨달으셨군요. 생각이 하도 느려서, 어린아이와 이야기하는 기분입니다. 그러나 세상 대부분의 인간은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법입니다. 저도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 범인 수준의 두뇌로, 잘 생각해 보시죠. 당신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약육강식. 약자는 고기가 되고 강자는 먹는 자가 된다. 바로 그것이 자네가 의미하는 바이군. 그래. 분명 자네는 강자야. 그리고 자네는, 지금 자네의 힘을 믿고 방심하고 있네. 그러나 명심하게. 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은 힘이나 능력만이 아니라네.
말은 번지르르르르르르하시군요. 그래서, 제 힘과 능력에 대적할 수 있는, 당신이 가진 것이 있나요? 무엇이든 보여주시요. 저는 자신있습니다.
자발적 협조에 의존한다는 것은 상대의 양심에 의존하는 것일세. 즉, 자네가 싸우는 상대는 내가 아닐세. 바로 자네 자신이야. 자네는 자네의 양심에 대적할 수 있겠는가? 자네가 경고문구를 무시하고 들어와 똥을 싸고, 담배꽁초를 버리고, 불을 지른다면, 자네의 양심이 자네를 때릴걸세. "인간의 가죽을 쓰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야? 어서 자살해. 네게 인간의 존엄성이 일말이나마 남아있다면 어서 자살해."
웃기는 궤변이군요. 양심은 공허한 추상화에 불과합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게 그 따위 공격이 통할 것 같나요?
부정하려 해도 소용없네. 양심은 실재한다네. 자네의 양심은 언제나 자네와 함께한다네. 존재하지 않는 것은 부정할 필요도 없네. 자네가 양심을 부정하는 이유는 바로 존재하기 때문일세.
다시 한번 강조하죠. 소피스트식 말장난은 제게 통하지 않습니다. 부정은 존재를 함축하지 않습니다. 저는 산타클로스를 부정합니다. 이것이 산타클로스가 존재한다는 증거가 되나요?
산타클로스는 존재한다네. 우리 모두의 마음,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고자 하는 그 따뜻한 마음, 그 마음 자체가 바로 산타클로스라네. 자네가 산타에게 선물을 받을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마음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네. 즉, 산타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네.
웃기지마. 나는 아무런 선물도 받지 못했어. 그래, 바로 내가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반증하는 증인이야.
이 나라의 형사법은 인적 증거가 아닌 물적 증거를 기반으로 한다네. 물증을 가져오게.
헛소리 하지마! 도데체 어떻게 물증을 가져오라는 거야? 물증이란 선물을 받았을 때만 가능해. 받았던 선물이 바로 물증이지.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받은 것이 없어. 무엇을 가져와야 하는 거야? 크흑......
자네는 부모에게 버림받고 불우한 시절을 보냈군. 어릴 적 산타클로스에게 어떤 선물도 받지 못했지.
- 왜 산타가 오지 않을까...
- 하루이틀 늦는건가...
- 하긴 차가 막히면 그럴수도...
- 하긴 차가 막히면 일주일쯤 늦을수도 있지...
- 아니 시발 지금이 2월인에 아직까지 안 오면 어떡해?
- 7월... 이제 포기해야하나
- 11월... 한 바퀴 돌겠네 곧...
- 12월 중순... 작년 선물도 같이 가져다주겠지?
- 12월 27일... 하루이틀 늦는건가...
- 씨발 이 짓도 지쳤어
닥쳐! 그 입 다물어! 내 어린 시절이 무슨 상관이야! 그래, 나는 똑똑히 경험했어. 그 누구도 내게 선물 따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홀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힘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모든 강력 범죄자들은 예외 없이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다네. 아빠가 술먹고 들어와서 때리지 않은 것만 해도 자네는 상당히 양호한 편이라네. 선물 투정이라니, 행복에 겨웠다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겠군.
선생님, 아까 제가 방심하고 있다고 지적하셨죠. 그러나 방심하고 있는 것은 선생님이 아닌가요? 저는 그저 어린 시절의 불우한 기억을 떠올려 고통받는 비참한 과거를 가진 냉혈한을 연기했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다 연기였어요. 산타클로스? 아무려면 어떱니까? 제가 선물을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아무려면 어떱니까? 당신의 수법은 이미 다 파악하고 있습니다. 직구로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만나면 변화구를 시도하죠. 그러나 소용없는 발악에 불과합니다. 저는 어떤 구종도 홈런을 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저의 강함을 어린 시절의 불우함으로 환원하려 하시는군요. 극악무도한 범죄자 역시 삶의 피해자로 환원하는 좌파논리리를 여기서 적용하다니, 아주 감탄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 정도는 제 상정내입니다. 당신이 무슨 수를 쓸지, 어떻게 나올지, 다 이 머릿속에 계산되어 있습니다.
아직 내 말이 끝나지 않았네.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겠네. 자네가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지 못한 것은 자네 잘못이 아니라네.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네.
닥쳐! 크리스마스 얘기는 제발 그만해! 산타클로스 얘기는 제발 그만해!
자네의 뜻이 그러하다면 알겠네. 원래의 화제로 돌아가, 자네에게 양심이 존재함을 증명하겠네.